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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경찰(2017)

2017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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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2017. 8. 9. 개봉

장르의 컨벤션을 따르는 상업 영화는 기획되는 순간부터 관객과 무언의 계약을 맺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장르를 표방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장르에 기대되는 쾌감을 관객에게 주겠다는 약속이니까요. 장르별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끝낼 것인지 뼈대는 다 정해져 있으므로, 창작자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개성을 불어 넣어 살을 붙이는 것입니다.

남성 주인공 두 명을 내세운 코믹 수사 액션물인 이 영화 <청년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일차적인 목표는 관객을 웃기고 수사 과정의 묘미를 잘 살리며, 괜찮은 액션 장면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대 2학년인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은 신입생 시절 우여곡절 끝에 절친이 된 이후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남은 크리스마스를 여자 친구도 없이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울적해진 두 사람은, 주말 외박까지 신청해 가며 강남 클럽에서 여자를 꼬셔 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낙심한 이들은 그냥 피시방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려다가 골목길에서 우연히 미모의 젊은 여성을 보게 됩니다. 그저 말이나 붙여 볼까 싶어, 몰래 그녀를 따라가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그녀가 봉고차를 탄 괴한들에게 납치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지만, 다른 사건에 밀려 수사가 빨리 이뤄지지 않자 직접 수사에 나서기로 합니다.

기대치를 상회하는 재미, 하지만…

애초부터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습니다. 흥행이 보장된 톱 배우들이 출연한 것도 아니고, 사건 수사가 중심인 여러 한국 영화들이 무리한 사건 설정과 허술한 추리 과정 때문에 실패한 사례를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꽤 재미가 있었습니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이런 장르에 꼭 필요한 것들에 집중한 것이 돋보입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과정이 단순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고, 주인공들이 깨닫게 된 사건의 실체도 나름의 무게감이 있습니다. 결말부도 크게 무리수를 두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액션 장면 역시 스케일은 작지만, 아이디어를 잘 살린 편입니다.

박서준과 강하늘의 연기 호흡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소 과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젊은 배우들의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합니다. 상황 전체를 보여 주는 마스터 샷만 있고, 두 사람의 애드리브를 잘 살려 줄 수 있는 적절한 커버리지 샷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은 자의식을 가진 주체적인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경찰대 체력 훈련을 담당한 여자 선배 교관 주희(박하선)가 그나마 유일하게 주체적인 캐릭터입니다(그러나 그녀 역시 이름 대신 ‘메두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십상입니다). 정신 연령이 고등학생에 가까운, 갓 스물이 넘은 두 청년의 눈에 비친 여성들은 꼬셔야 하거나 성적인 흥분을 자아내는 대상, 혹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출해야 할 사람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두 주인공이 하는 행동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본 여성이 예쁘면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심야에 골목길로 뒤따라 가도 괜찮은 걸까요? 사건 해결 과정에서 나오는 귀파방 같은 유사성행위 업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그들이 구해 준 소녀와 재회한 두 주인공이 한 번이라도 더 안아 보려고 하는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여성 아이돌 팬 사인회에서 자주 불거지는 성희롱 사건 저변에 깔린, ’음원 구매해 줬으니 이 정도는 괜찮잖아?’ 하는 식의 태도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대중 영화일수록 상식과 보편에 기초해야

물론 모든 영화가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기준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대중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 영화라면, 미성숙하고 교정이 필요한 여성관을 그대로 노출해서는 안 됐습니다. 재미있는 아이템의 가능성을 반감시킨 감독과 제작자의 무신경함이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청년경찰>은 올 초 설날 시즌에 개봉하여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둔 <공조>와 여러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 단순영쾌한 스토리와 해결, 신경 써서 만든 액션 장면들이 그렇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 첫 주말까지 손익 분기점에 가까운 흥행을 기대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여성 캐릭터입니다. <공조>에서 유해진의 아내와 처제로 나왔던 장영남과 임윤아의 솔직하고 생생한 모습에 비하면,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문제가 많습니다. 자기의 의견이나 욕망 없이 남성이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거나, 기꺼이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주는 여성은 실생활에서 보기 힘듭니다. 미숙하고 어리석은 남성들의 머리속에서나 존재하는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니까요.

만약 이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 그치면서 여름 개봉작에 걸맞는 흥행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매우 자명해 보입니다. 대중적인 기획일수록 좀 더 상식적이고 보편적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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