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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American Honey (2016)

2017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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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티캐스트

2017. 7. 13. 개봉

세계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성공에는, 80년대 중산층 청소년 성장 영화의 플롯과 정서를 빌려 와 슈퍼히어로 영화에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의 성장이란 테마는 잘만 만들면 폭넓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은 누구나 겪는 것이고, 사람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 성장을 필요로 하니까요.

이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역시 그런 성장물의 형식을 취하지만, 정규 교육 과정을 다니는 대도시 중산층 청소년이 아닌, 남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방 출신 하층 계급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릅니다.

스타(사샤 레인)는 이제 갓 성인이 된 18세 소녀입니다. 어린 동생들과 함께 마트 쓰레기통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들을 뒤지던 그녀는, 미니버스를 타고 마트로 들어온 제이크(샤이아 라보프) 일행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마트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맞춰 멋대로 춤을 추는 등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지요. 스타가 자기들에게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아본 제이크는 그녀를 따로 불러내서 같이 가자고 합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잡지 정기 구독을 받아 생활한다면서요.

스타는 초면에 곧바로 그런 제안을 던지는 제이크가 못 미더웠던지 일단 거절합니다. 하지만 틈만 나면 자신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아버지, 아직 많이 어린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스타의 일상에는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제이크 일행이 묵고 있는 모텔을 찾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종이 잡지 구독으로 먹고 산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스타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하는 잡지 판매 조직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펜으로 신청서를 써서 종이 잡지를 구독하게 만들고, 그걸로 먹고 산다고 하니 대번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듭니다. 주인공이 일종의 다단계 조직 아니면,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데 걸려든 건 아닐까 싶지요.

이들의 행동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잡지 구독을 매개로 한 구걸에 가깝습니다. 구독을 받아 내기 위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기도 하죠. 리더인 크리스탈(라일리 키오)은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여성으로서, 실적만 제대로 올리고 기본 규율만 지키면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조금 자유로운 방식의 앵벌이 조직으로서, 60년대 반문화 히피 공동체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여기에 속한 청년들은 떠나지 않습니다. 계속 숙소를 옮겨 다니면서 낮에는 잡지를 팔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지내는 삶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들 주인공 스타와 비슷하게, 여기서 나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요로운 미국 사회의 사각 지대에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청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음악입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빼곡히 채우는 인기 팝 음악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거나 춤을 추고, 남몰래 속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표현의 수단이니까요. 이들이 자연스럽게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이면에는 ‘그래도 이렇게 함께 지낼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이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국의 여성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이 영화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Jury Award)을 받음으로써, 영화제의 3등상에 해당하는 이 상만 세 번째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미 <레드 로드>(2006)와 <피쉬 탱크>(2009)로 두 번이나 받은 적이 있지요.

실제로 잡지 판매 조직을 1년여간 취재하여 극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캐스팅하여 현실감을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젊은이들의 특이한 생활과 그들을 통해 보이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 필치로 잘 담아낸 것이 돋보이는 점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갈등을 고조시키고, 때로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연출력도 좋습니다. 때문에 2시간 40분을 넘어가는 러닝 타임이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주연을 맡은 사샤 레인은 연기 경력이 없는 신예로서 휴가차 해변에 놀러갔다가 감독 눈에 들어 길거리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직업 배우를 능가하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감정 표현이 여러 장면에서 빛납니다. 신입인 스타를 가르치며 애증의 관계를 쌓아가는 제이크 역할의 샤이아 라보프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제이크란 캐릭터의 특징을 비교적 차분하게 잘 표현한 편입니다.

크리스탈 역의 라일리 키오는 출연 분량은 적지만 도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끕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손녀로 유명한 모델 출신의 배우인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의 다섯 아내 중 하나로 나왔었고, 앞으로 공개될 스티븐 소더버그와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등 앞으로의 활약을 더 기대해도 좋을 배우입니다.

미국 사회의 그늘과 사회적 삶에 대하여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스타가 잡지를 파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입니다. 남는 건 시간과 돈 뿐이라는 부자 중년 남성들과 위선적인 중산층 주부들, 돈은 많이 벌어도 격무로 인해 돈 쓸 시간이 없는 유전 노동자들, 마약 중독자 부모를 둔 탓에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가난한 지역 아이들의 모습 등은 미국 사회의 다채로운 민낯을 생생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미국 사회와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대부분 할리우드의 주류를 차지하는 리버럴한 백인 중산층 남성의 관점을 취한 것일 때가 많지요. 그런 점에서 국외자인 영국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스타가 이들과 정서적, 경제적 원조를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스타가 포용력 있고 가정적인 트럭 운전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앞으로의 꿈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거나, 잡지 구독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거의 방치된 채로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자기 돈을 들여 텅빈 냉장고를 가득 채워 준다든지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일구어 낸 거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공에는 가족들의 협력과 희생, 국가가 제공하는 기반 시설과 공공 서비스의 혜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최근 큰 물의를 빚었던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학교 급식 노동자에 대한 몰상식한 발언이나, 프랜차이즈 경영자들의 각종 일탈 행동들도 따지고 보면 그런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도와 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인식하고 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죠.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청년들은 국회의원이나 변호사, 혹은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며 고작 남들의 호의에 기대 살아가는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들은 삶이란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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