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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프라이드 Pride (2014)

2017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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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진진

2017. 4. 27. 개봉

연대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감과 지지를 표명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연대의 대상은 소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층이나 다수파들의 이익을 지지하고 그들의 편이 되는 건 ‘야합’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테니까요.

하지만 연대가 말처럼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사회 전체로 볼 때, 소수자들과 공감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다수파라고 생각하며 소수자들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런데 이들마저도 서로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연대의 대상과 자신 사이에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고 느낄 때지요.

이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 두 집단이 우여곡절 끝에 연대에 성공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1984년 6월,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숨겨 온 스무 살 청년 조(조지 맥케이)는 난생 처음 런던의 게이 프라이드 행진(‘스톤월 항쟁’을 기념하여 매년 6월 마지막 주에 성소수자들이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벌이는 행진)에 참가합니다.

여기서 광부 파업을 지지하는 모금 운동을 펼치는 활동가 마크(벤 슈네처) 일행을 알게 된 그는, 얼떨결에 그들과 함께 파업 지지 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LGSM(Lesbians & Gay Men Support Miners: 광부를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이라고 칭하며 모금 활동을 펼치지만, 처음에는 성소수자와 광부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성소수자들은 마초적인 노동 계급 문화로부터 자신들이 받았던 모욕과 조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들이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광부 노조 역시 성소수자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노조를 건너 뛰고 광산촌이 몰려 있는 웨일즈 지역의 작은 마을들에 직접 연락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드디어 그 중 한 곳에서 성금을 받겠다는 응답이 오지만, 알고 보니 그들 역시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자신들을 돕겠다고 나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LGSM의 ‘L’이 런던의 머릿글자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그들의 모금에 깃든 진정성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마을로 초청하는 행사를 갖기로 합니다.

흥미진진한 변화와 성장

영화는 이들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낼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장과 변화도 잘 담아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좀 많은 편인데, 이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차분히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조지 맥케이, 벤 슈네처 같은 신예들과 빌 나이, 이멜다 스톤턴 같은 관록 있는 노장들, 그리고 도미닉 웨스트, 앤드류 스캇, 패디 콘시다인 같은 중견급을 총망라한 영국 배우들의 연기가 이 연대와 공감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소수자들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대에 실패하는 이유를 좀 더 생각해 보면, 결국은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앞날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힘을 보탤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신자유주의의 전략

기득권자들은 언제나 이런 부분을 노립니다. 80년대 대처 정권이 광부 노조와 성소수자들을 다룬 방식도 그랬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수자들을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과 연관시키고 낙인을 찍습니다. 단순하게 품위가 없다는 식의 얘기부터, 불법을 저지르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심지어 모든 악행의 근원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런 전략은 소수자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여론을 나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소수자 자신을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우린 안돼. 절대 못 해낼 거야.’ ‘저 사람들도 우리를 싫어할 거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소수자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저주하고 화를 내게 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지난 9년 동안 해온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혐오를 부추기고 서로를 욕하고 적대하는 것을 보편적인 사회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 이들 극우 정권의 가장 큰 해악이었습니다. 그 후유증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대선 직후인 요즘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재인 지지자들과 진보 진영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양쪽 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서, 기득권층이나 사회의 다수파들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인데, 인터넷 상에서는 서로를 물어 뜯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남을 깔아뭉개면 당장은 자신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안 남게 됩니다.

함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서로 연대하는 일이 당장 큰 변화나 기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공동체적 연대의 경험은 어떠한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설정해 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똘똘 뭉치고, 서로의 잘잘못을 가려가며 헐뜯는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번 고개를 똑바로 들고 일어서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돌아봐야 합니다.

연대하지 않으면 모두를 잃을 수도 있지만, 연대하면 동지 한 명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바로 이듬해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서 보여 준 광부 노조들의 연대는 이런 사실을 조용하지만 힘있게 웅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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