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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 24 Wochen (2016)

2017년 6월 20일
24W_P

©영화사 진진

산모가 원할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60여개국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낙태는 논쟁적인 사안입니다. 태아도 생명이 있는데, 어머니가 마음대로 그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이 주된 논리지요. 사회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거나, 태아가 유전 질환을 가졌음에도 아이를 낳아 열심히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낙태 반대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 <24주>는 아이를 임신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열심히 자기 할 일을 다하던 유명 코미디언이 결국 낙태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줍니다.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아스트리드(율리아 옌치)는 남편과 함께 딸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뱃속에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죠. 당당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어필하면서도, 촌철살인의 멘트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충격을 받은 아스트리드 부부는 고심 끝에 일단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정합니다.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온가족이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아에겐 선천성 심장병까지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옵니다.

독일은 1993년 이후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입니다. 낙태와 관련한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산모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낙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뱃속의 아이를 지운다는 것은 산모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는 일입니다. 특히 아스트리드처럼 아이가 많이 자란, 임신 7개월(24주)이나 되었을 때 낙태를 하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감독인 안네 조라 베라체드는 산모인 아스트리드의 일상과 감정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합니다.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가족들과 지낼 때의 편안함, 출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늘이 짙어져 가는 얼굴 등을 특별한 기교 없이 포착해 내지요.

이 때문에 아스트리드 역할을 맡은 율리아 옌치의 연기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주목받았던 율리아 옌치는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며 아스트리드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낙태 이슈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낙태가 불가피한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이래도 불법이라고 막을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전반적인 인권 현실이 낙후된 시대나 사회를 배경으로 할 때 효과적이지, 독일처럼 낙태가 전면 허용된 사회에 대해서는 맞지 않는 전략입니다.

아스트리드의 경우는 낙태가 불가피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사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고, 가정 분위기도 화목합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도 정상인 만큼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선천성 심장 기형의 경우도 요즘에는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간단한 수술이나 시술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아스트리드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는 부모들도 많은데, 태아의 살 기회를 산모가 박탈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요.

하지만 손가락질하기 전에 아스트리드가 겪었을 고통에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낙태를 통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산모입니다. 자기 몸의 일부이자 또 하나의 생명인 태아를 인위적으로 떼어내는 일이 절대 쉬울 리 없습니다.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을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이 영화는 낙태가 아주 개인적인 일이며, 최종 결정권은 언제나 산모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남편이 낳고 싶어하고 남들이 눈총을 주더라도 산모가 어렵게 내린 결정 그 자체를 존중해 주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낙태가 사실상 불법인 나라에서 너무 앞서가는 주장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출산율이 낮은 데 낙태까지 허용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낙태는 이미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1천명당 낙태 건수는 낙태가 합법화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많은 수준입니다. 언제까지나 생판 모르는 남이 하면 욕하고, 가까운 지인들이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고 감싸는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영화 속에는 아스트리드가 낙태 시술을 받는 과정이 자세히 나옵니다. 규정과 절차에 맞게 위생적인 환경에서, 산모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술되지요. 우리나라도 불법 시술로 인한 부작용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산모가 원할 때 낙태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산모가 ‘원치 않는 임신’ 자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성 혼자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임을 신경쓰지 않는 애인과 배우자,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떨어져 출산과 육아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사회 경제적 여건, 장애를 가진 아이나 싱글맘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에도 책임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낙태를 합법화하고 그에 대한 표준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이제껏 산모 혼자가 져야 했던 책임과 부담을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나눠 지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주>는 비록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우리 사회가 낙태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모의 결정은 존중하고 책임은 나눠 갖는, 적극적인 낙태 합법화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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