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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2017)

2017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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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26. 개봉

사람들이 정치 과정에 몰입하는 이유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는 특정 사안에 대해 정당이나 정치인이 취하는 입장과 정책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정책이 실종됐다’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실제로 정책이 전무한 선거는 없습니다. 어떤 정치 세력이든지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지지자를 모으게 되니까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가 나오는 현상 역시, 단순한 지역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그 정당이 해당 지역의 정치적 이익을 확고하게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특별시민>은 가상의 서울시장 선거를 소재로 합니다. 현직 시장 변종구(최민식)는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합니다. 그는 대선 후보로 발돋움하기 위해 이번 선거를 꼭 이겨야 합니다. 젊은 광고 기획자인 박경(심은경)은 변종구의 토크 콘서트 자리에서 당돌한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게 되고, 이를 눈여겨 본 변종구는 그녀를 자신의 선거 참모인 국회의원 심혁수(곽도원)의 팀에 합류시킵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속임수와 정치 공학입니다. 동영상 유출 등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 치명적인 약점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와 거짓말, 오로지 지지율만을 높이기 위한 정치공학적 단일화 등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선거에 참여한, 변종구를 비롯한 나머지 후보들의 이념 성향이나 핵심 정책 같은 것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셋 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지지 세력을 위해 표방하는 가치와 신념이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미국 같이 양당제가 확립된 국가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정치인이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만 알려 주면 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정당에 따라 확실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여러 정치 세력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는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영화 속 선거 캠페인이 현실 정치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지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누가 당선되든 차이점이 없는 선거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각 후보들의 정책과 이념을 소개하고 차별점을 두지 않은 것은 이야기 전략에 있어서도 확실히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우선 정치 활동의 가장 큰 아이러니인, 정치인이 공적으로 표명하는 자아와 사생활에서 드러나는 자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공정함과 새로운 정치를 부르짖어 온 정치인이 일상 생활에서는 갑질의 화신이었다든지, 완고한 보수주의자로서 성소수자를 노골적으로 공격해 온 사람이 사실은 동성애자라든지 하는 식의 ‘간극’을 설정하지 못함으로써, 관객의 강력한 흥미를 유발할 기회를 놓치는 거죠.

할리우드의 잘 만든 정치 영화 <킹메이커>(2011)와 비교해 보면 이런 아쉬움은 더욱 커집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홍보 담당자 라이언 고슬링이 자기가 진심으로 지지해 온 대선 후보 조지 클루니의 추악한 사생활과 얽히면서 겪는 갈등에 있습니다. 이것은 극 중에서 굉장한 딜레마를 일으키며, 그에 따른 라이언 고슬링의 선택 역시 매우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게 됩니다.

이에 반해 <특별시민>에는 이런 종류의 극적인 갈등을 활용하거나, 현실을 풍자하는 인상적인 논평을 가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관객이 주인공 변종구에 대해 가지는 정서적 거리감을 좁혀 주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관객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노회한 정치꾼인 변종구라는 인물의 행각을 별다른 감정없이 관찰하게 될 뿐입니다.

만약 이 영화에서 변종구가 대변하는 정치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관객들은 즉시 평소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게 됐을 것이고, 그에 따라 변종구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 옹호하거나 미워했겠지요. 그랬다면 이 영화가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인물에 대해 관객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사랑하든 미워하든 어떤 감정을 갖고 대하게 만드는 것이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악성 댓글이라도 달리는 정치인이, 아무 댓글도 안 달리는 정치인보다 관심도와 지지율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어쩌면 이 영화의 제작진은 특정 정치 세력을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반대하는 영화라고 지적당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를 다루는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피해가려 한 것은 자충수로 보입니다. 정치공학적 술수만 있고, 가치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에너지가 없는 맥빠진 영화가 나오고 말았으니까요.

선거는 표를 얻기 위한 싸움입니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부동층을 자기 쪽으로 끌고 와서 상대보다 많은 표를 얻어야 승리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가치’입니다. 정치인은 스스로가 어떤 가치와 이념을 대표하고 있는지 당당하게 밝히고 그것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케팅과 정치 공학으로 얻는 지지율은 일시적인 것일 뿐 실질적인 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현상들만 보더라도 이런 원칙은 쉽게 확인됩니다. 홍준표 후보가 토론회에 나와 의도적으로 극우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는 것, 안철수 후보가 특이한(?) 마케팅에도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내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 문재인 후보가 오랜 기간 견고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 등은 선거에서 가치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 영화 <특별시민>은, 등장인물들이 틈만 나면 이야기하듯 ’정치라는 것은 원래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것’이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상식이죠. 그런 것만 가지고는 특별한 감흥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극중 곽도원이 이야기하는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기’라는 대사는 정치 행위의 핵심을 잘 찔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에는 똥물만 넘치고 진주가 보이지 않습니다. 감독은 혹시 진주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진짜 진주는 ‘누군가의 당선을 통해 현실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가치’,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뽑는 것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정치 세력, 그리고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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