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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워터 호라이즌 Deepwater Horizon (2016)

2017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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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5. 개봉

2010년에 있었던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는 사상 최악의 환경 재앙으로 손꼽히는 사건입니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 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럼(British Petroleum, 이하 BP)이, 세계 최대의 해양시추업체 트랜스오션 소유의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호를 임대하여 개발하던 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죠. 시추선은 폭발 사고와 함께 불탔고, 그 이후 5개월간 유정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 원유가 바다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은 사고 발생 당일 하루 동안의 상황을 재난극의 방식으로 재연합니다. 당시 ’딥워터 호라이즌’ 호는 시추 작업에 따르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설비 고장 등을 겪으면서, 예정된 시추 일정을 넘겨 작업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BP는 막대한 비용 손실을 들먹이며 필수적인 안전검사 등을 생략하고 빨리 석유를 뽑아낼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시추선을 총괄하는 책임자 지미 하렐(커트 러셀)과 전기 설비 책임자 마이크 윌리엄스(마크 월버그)는 위험을 경고하며 BP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지만, BP의 관리자 비드린(존 말코비치)은 작업을 강행할 것을 지시합니다.

재난물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은 압도적인 재난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그러나 이 장르의 핵심은 재난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영화의 중심 테마와 곧장 연결됩니다. 많은 경우, 등장 인물들이 인간애와 이타심에 기반한 선택을 하며 감동을 주죠. 이 영화 속의 등장 인물들 역시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딥워터 호라이즌>은 다른 재난물들처럼 짧은 도입부가 지나간 다음 곧바로 재난 상황을 보여 주는 식의 이야기 구성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의 논리와 전문가로서 원칙을 준수하는 문제를 대립시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비용 절감을 위해 둔 무리수가 어떻게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되는가를 극적으로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주인공 마이크가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일터로 복귀하여 각 파트의 상황을 체크하면서 동료들과 간단한 농담을 나누며, BP의 관리자 비드린과 대립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다 보여 주는 것에는 그런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극의 진행이 느슨해질 수도 있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숙련된 인력들이 서로 부대끼며 작업하는 곳 특유의 공동체적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워낙 다양한 공간이 등장하고 장면 전환도 빨라서 주고 받는 대화들의 뉘앙스를 제대로 음미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한정된 글자 수 안에서 뉘앙스를 최대한 잘 살린 자막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 영화의 자막 번역을 맡은 이는 <데드풀>, <스포트라이트> 등의 자막으로 잘 알려진 황석희 씨입니다.)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는 중반부에 이르면, 그동안 영화가 보여 준 인간 관계들은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 앞에서 빛을 잃어 버립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된 노동을 건강한 유머로 이겨내던 사람들이 엄청난 압력으로 분출하는 원유와 진흙더미들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지고 마니까요.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꼭 살아서 빠져 나가기를 바라게 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클리셰가 많은 후반부에도 극에 대한 집중도가 별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감독 피터 버그는, 빈 라덴 암살 작전에 투입된 정찰병 분대가 위기에 처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론 서바이버>(2013)에 이어 다시 한 번 실화 소재의 영화에 도전하였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 사건을 묘사하는 데 주력합니다. 불안정한 유정의 상태를 보여주는 부분부터 시추선이 폭발하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하게 구현하였으며, 실제 시추선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세트를 지어 지형 지물을 활용하고, 생생한 화면을 만들기 위해 CG 사용을 최소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압도적인 재난 현장을 통해 영화에 긴장감과 스릴을 부여하는 연출력도 빛을 발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꾸만 인간을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을 구현한 이상적인 제도라는 논리를 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는 결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생존과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말이 안된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지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본의 논리는 전체 인류의 2~3% 정도를 차지한다는 사이코패스의 사고 방식에 가까워 보입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그들은 타인과 연대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상상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론에서 가정하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이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은 사실 단순한 영화입니다. 사고 전후의 상황을 재난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재현하는데 주력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금전적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가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고, 공동체를 파탄내며, 더 나아가 생태계까지 파괴하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또한 참혹한 위기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돕고 함께 살아 남으려 하는 인간의 의지가 본능에 가깝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지요. 장르 영화는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한 고안물이지만, 이렇듯 삶의 진실 한 자락을 드러내는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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