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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Moana (2016)

2017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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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2. 개봉

신화와 민담의 이야기 구조를 시나리오와 영화 기획에 활용하는 트렌드는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를 특징짓는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영웅 신화의 모티브와 이야기 구조를 참조한 작품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8, 90년대의 할리우드가 고전 장르의 복원과 재해석에 매달렸던 것과 비교하면 두드러진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0년대에 등장한 홈비디오 시장의 급성장은 극장 상영을 중심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큰 위협이 되기도 했지만 기회도 제공했습니다. 창작자와 관객은 고전 장르영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할리우드는 현대적으로 변형된 장르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가정에서는 맛볼 수 없는 쾌감 – 폭력과 성의 적나라한 묘사, 장대한 스케일의 화면 등 – 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90년대 말부터 쏟아진 다양한 장르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할리우드의 장르 활용 전략도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제 장르팬이라면 매회 장르 규칙이 반복되고 재활용되는 드라마를 더 즐겨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신화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굳이 여러 편으로 된 시리즈물을 다 보지 않아도 되며, 보편적인 상징을 담고 있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장르를 불문하고 각광을 받게 된 것이죠.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에서도 이런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디즈니입니다.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약간 무시해도 상관없는 판타지와 애니메이션이 주력이다 보니, 신화의 플롯 구조와 주인공을 그대로 도입하여 영화를 만들기 쉬운 위치에 있습니다. 픽사(3D 애니메이션 노하우), 마블(히어로물 판권), 루카스 필름(스타워즈 판권) 등 관련 아이템이 있는 제작사들을 차례로 인수한 것은 아이디어와 소재를 다양화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이것은 그대로 적중하여 괄목할 만한 시장 점유율 확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신화적 상상력이 제대로 꽃핀 작품입니다. 폴리네시아의 신화와 민담을 수집하여 재구성한 이야기는 공산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기존 신화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의미심장합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섬 모투누이에 살고 있는 소녀 모아나(아우이 크라발호)는, 족장의 딸로서 어릴 적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여 일찌감치 차기 족장 자리를 예약해 둔 인물입니다. 바다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는 아버지는 섬을 둘러싼 산호초 바깥으로 항해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늘 그녀를 부릅니다.

마을의 샤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모아나가 바다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투누이에도 고대 전설의 저주가 손길을 뻗치자,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모아나가 전설의 반인반신 마우이(드웨인 존슨)를 찾아 테 피티의 심장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며 모험을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인어공주>(1989)와 <알라딘>(1992)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었던 공동 감독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는 <공주와 개구리>(2009) 이후 7년만에 선보인 이 작품으로 여전한 관록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유의 뮤지컬 시퀀스들과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들은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에 익숙치 않은 어린 아이들도 빠져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인물의 다양한 표정을 사실적으로 포착해 내고, 다채로운 물의 움직임을 재현해 낸 작화는 기존 애니메이션의 표현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귀에 쏙 들어오는 모아나의 주제가 <나 언젠가 떠날 거야(How Far I’ll Go)>와 마우이의 등장곡 <괜찮아(You’re Welcome)>은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들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신화적 원형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되살려낸 점입니다. 주요 캐릭터인 모아나, 마우이, 테 피티는 각각 세계 각지의 신화와 민담에 등장하는 여성 영웅, 남성 영웅, 모성신의 전형입니다. 모아나는 우리 신화의 바리데기를 연상시키고, 마우이는 북유럽 신화의 변신자재자 로키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합쳐 놓은 것 같으며, 테 피티는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나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모아나는 전형적인 여성 영웅의 여정을 따르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대중 문화에서 많이 다루어진 신화적 영웅은 자기 희생과 반성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여 과업을 달성하는 남성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성 영웅의 이야기도 버젓이 존재합니다.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잊힌 자신의 능력과 목소리를 기억해 내고 되살림으로써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말이죠.

디즈니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였습니다. 초기에는 구원자의 출현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 역할인 경우가 많았지만, <인어공주>(1989) 이후 변화한 시대상에 맞게 적극적인 여성을 등장시켰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고 더 나아가 이야기 속 세계 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캐릭터로 발전했지요.

이런 변화를 이끈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실사-애니메이션 합성물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2007)입니다. 에이미 아담스가 동화 속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건너온 순진한 공주 지젤 역할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던 이 작품은, 엉뚱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던 자신의 능력이 지닌 가치를 깨달아 알게 되면서 그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여성 영웅의 캐릭터 발전 과정을 따릅니다.

그 이후에 나온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 즉 <공주와 개구리>(2009)의 티아나, <라푼젤>(2010)의 라푼젤, <주먹왕 랄프>(2012)의 바넬로피, <겨울왕국>(2013)의 엘사, <주토피아>(2016)의 주디, 그리고 픽사가 만든 <도리를 찾아서>(2016)의 도리 등은 모두 그런 종류의 인물들입니다. 모아나는 앞서 나온 캐릭터들보다 훨씬 더 원형에 가까운 인물로서 전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여성 신화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두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8,90년대 애니메이션들과 그 정수가 담긴 <모노노케 히메>부터, 코코넛 해적 카카모라를 통해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까지 수많은 다른 영화들이 떠오른다는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다양한 지역의 설화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모아나>의 흥행 성공은 디즈니의 여성 영웅 신화가 쇼 비즈니스 시장에 완벽하게 자리잡았음을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폴리네시아 같은 생소한 지역을 배경으로 했고 흔한 멜로 라인도 없지만,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고 세계를 구원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이런 여성 영웅 모티브는 디즈니 산하의 실사 영화 프로젝트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스타워즈 3부작의 중심에 있는 레이 같은 캐릭터나,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마블의 블랙 위도우 단독 작품 루머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점이 있으면 언젠가는 내리막도 있는 법입니다. 예술의 역사에서 완벽한 전형이 창조된 이후에는 언제나 매너리즘의 시기가 뒤따랐습니다. 물론 여성 영웅 서사 자체는 앞으로도 보여 줄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디즈니가 활용해 온 방식은 머지 않아 신선함을 잃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주토피아>, <도리를 찾아서>, <모아나> 3편을 2016년 한 해에 모두 개봉한 것만 봐도 그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요. 그들이 닥쳐 올 매너리즘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지, 무엇으로 또 다른 새로운 전형을 만들게 될 지 지켜보는 일은 관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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