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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거든 – 다카하시 겐이치로

2016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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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장편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와 단편집 <겐지와 겐이치로>의 작가로 남아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거론되는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들이지요. 인위적으로 꾸민 느낌은 강하게 들었지만 꽤 근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쉽게 희망을 잃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고요.

이 책 <우리의 민주주의거든>은 그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일본의 진보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아사히신문’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것입니다. 2011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만 4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쓴 이 글들은 주로 집필 당시 일본의 시사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과 그 수습 과정이 일본 사회의 민낯과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 삶의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하지요. 또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현실 정치를 바꿔 나가자고 이야기 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책과 영화 등을 예로 듭니다.

이 책의 절반이 넘는 글들은 이런 논지를 갖고 있는데, 우리에게 반면 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사회경제적 구조 자체가 일제 식민 지배의 잔재를 못 벗어나고 있고, 그 때문에 20여년 전에 일본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지나치게 개개인의 각성과 변화, 스스로 만족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면서 사회의 문제를 거론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식의 논리는 일견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공통의 청사진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만족하는 건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하는 진통 효과가 있을 뿐, 병의 뿌리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니까요.

일본 사회 내부 문제가 아닌 국제 문제, 즉 한국이나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몇몇 글들도 좀 거슬립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중도파 지식인들이 흔히 그러하듯, 저자 역시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를 극도로 경계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은 국가가 잘못한 거고, 일본 국민들 역시 전쟁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의 반일 감정 역시 양국 정부의 국가주의적 선동의 산물일 수 있다고 단순화 해버린다는 겁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서로 한 발짝 양보해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을 하자고 하죠. 아마도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많이들 갖고 있는 생각일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전후 미국의 반공 기지로서, 극소수의 전범자만 처벌하고 일본 군국주의 시절의 지배 계급을 주축으로 삼아 지금껏 일당 독재를 계속해 온 자민당 정권에게 있으니까요. 저자 식의 주장은 일본 정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안됩니다. 일본 정부의 미적지근한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나라 역시 아직까지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전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교 정상화를 후다닥 해치워 버린 과오도 있기 때문에 비슷한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논지나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 글의 전개 방식은 우리 작가 장정일이 신문 혹은 주간지 칼럼에 기고하는 글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스타일과 다른 소설을 썼다는 공통점도 있지요. 하지만 장정일이 훨씬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있고, 논지가 명확한 글을 쓰는 편입니다.

이 책은 일본 지식인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과 그 한계가 무엇인지 검토하고 싶다면 한번쯤 펼쳐 봐도 좋을 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사회를 보는 시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고 싶다든지, 깊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찾고 있다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장정일 같은, 더 괜찮은 국내 필자들의 글을 찾아 보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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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글자들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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