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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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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엣나인필름

2017. 8. 17. 개봉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의 공적 자원을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의 사적인 이익 추구에 사용한 것입니다. 아직 그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권력 핵심층 및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여러 가지 국책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려 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른바 ‘사자방’ 비리, 즉 4대강 사업, 자원 외교, 방위력 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각각 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혈세를 낭비했습니다. 박근혜 역시 자신의 최측근인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느라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는 바람에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지요.

공영 방송인 KBS와 MBC를 장악하여 정권의 나팔수로 만든 것은 그런 전횡을 부리기 위한 정지 작업이었습니다. 이 영화 <공범자들>은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공영 방송을 망가뜨린 숱한 공범들과 그에 맞선 언론인들에 관한 기록 영화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인사 난맥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등 국민 여론을 거스르는 행보로 급격한 지지율 추락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환경을 바꾸기 위해 공영 방송부터 먼저 장악합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방송사 사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바꾸고 그들을 통해 보도 내용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MBC와 KBS 노조는 제작 거부를 단행하는 등 투쟁에 나서지만, 방송사 측은 노조 핵심 간부를 해고하거나 징계하고 원래 업무와 상관없는 보직을 맡기는 등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굳이 이 영화를 또 봐야 하나 싶어 관람을 망설였습니다. 지난 9년간 수구 정권이 저지른 언론 탄압 사례들을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제 교만이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사실관계를 안다고 해서, 그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영상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정권에 의도에 맞게 공영 방송 뉴스의 보도 방향을 통제한 MBC와 KBS의 전임 사장 및 고위 임원들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이 MBC 해직자이기도 한 최승호 감독은 기회가 닿는 대로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부합니다. 답변하더라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궤변을 늘어 놓지요.

다른 하나는 정권의 공영 방송 장악 시도에 대해서 조직적인 저항을 이끌었던 MBC, KBS의 전직 노조 간부들 인터뷰입니다. 회사를 떠난 이들도 많고, 자신의 원래 업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하는 수모를 겪으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과거의 일을 담담히 회고하며 투쟁의 결과가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파업과 제작 거부 등의 투쟁이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 재확인합니다.

남은 하나는 당시 상황에 근접해서 촬영한 생생한 동영상들입니다.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확보한 자료들이죠.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만 공영 방송 장악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을 접했을 뿐, 실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일반 관객들에게 사건 당시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기회를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고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대를 명시하며 일목요연하게 모든 사건을 요약 정리하려 들지 않지요. 대신,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부터 박근혜 탄핵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간의 공영방송 탄압 경과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서 보여 줍니다. 사장 교체로부터 시작된 공영 방송 장악의 결과가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안일한 보도 태도로 나타났으며, 정권이 바뀌어도 초토화된 공영 방송의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 속 상황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방송사 간부들을 보며 쓴웃음과 함께 분노를 느끼게 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은 일들을 담담하게 증언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는 정도의 건전한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보통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관객들의 반응이 제각기 다양하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달랐습니다. 시내 복합상영관의 작은 관이라 다른 관객들이 혀를 차고 탄식하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는 것이 다 들렸는데, 다들 비슷한 시점에 그러고 있어서 뭔가 은밀한 동지 의식 같은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공감대 형성은 일반 상업 영화 중에서도 특급 흥행작을 관람할 때나 가능한 것이라 더 인상적이었죠.

사람들은 시류를 거스르며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남들 하는 대로 해야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특히 권력과 자본이 생존권을 위협하며 대세를 따르라고 압박하면 배겨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동시대인은 그런 이들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각자 자기 살길을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러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니까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 때가 왔을 때 역사의 기록에 남는 것은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 희생은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의 앞날을 비춰 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이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활동으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하 애국지사들의 행적, 해방 이후 지속해서 독재에 맞서 싸운 지식인과 노동자 및 서민 대중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시대의 어둠을 밝힌 등불로 기억됩니다. 이 영화에서 공영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서 싸운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싸움은 공영 방송의 독립성 확보라는 결실을 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투쟁의 과정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공범자들>은 언론인들의 모습을 담았을 뿐이지만, 지난 9년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조원과 그 가족들, 세월호 유가족 등 크고 작은 인권 유린과 노동 탄압에 항거했던 이들 말입니다. 우리가 탄핵 성공과 정권 교체에 들떠 잠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희생과 눈물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이 영화가 더욱 가치 있는 기록물인 이유입니다.

장산범(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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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NEW

2017. 8. 17. 개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지난 2013년에 개봉한 <숨바꼭질>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두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가 높다거나 뛰어나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집 하나가 가장 큰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인 한국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공포를 제대로 건드려 입소문을 탄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 영화 <장산범>은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이 두 번째로 내놓은 장편 영화입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괴담으로 돌아다녔던 ‘장산범’을 소재로 삼아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공포물로 만든 것입니다.

희연(염정아)은 치매 증세가 있는 시어머니(허진)를 직접 모시기로 하고 시어머니의 고향인 장산으로 이사합니다. 익숙한 공간으로 옮기면 조금이라도 병세에 차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죠. 여기엔 수의사인 남편 민호(박혁권)와 어린 딸 준희가 함께 합니다.

그런데, 근처 뒷산에는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꾀는 동굴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희연의 집에 들렀던 동네 아이들이 거기로 갔다가 공포스런 일을 겪게 되자,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굴로 갔던 희연은 숲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신린아)를 만납니다. 이 때부터 희연과 희연의 가족은 이상한 일을 겪게 되지요.

‘장산범’이란 존재 자체는 공포 영화의 소재로 나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꾐에 빠지게 하고, 거울을 활용하여 습격하는 그의 수법은 써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공포와 스릴을 자아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마지막 30분간 이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관객이 제대로 된 서스펜스와 스릴을 맛보기 전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객은 무서울 듯 말 듯 한 미적지근한 상태로 1시간 정도를 보내야 합니다. 감독도 뭔가 긴장감을 느끼게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그것이 딱히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공포물의 이야기 전략

공포물은 보통 시작할 때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미리 드러냅니다. 그래야 관객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을 지닌 채 영화를 보게 됩니다. 제작진은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질 ‘대결’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이런 불안감을 차곡차곡 증폭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두려운 존재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밝혀 나가는 식의 미스터리 플롯이 덧붙여지기도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어떤 특징을 지닌 존재인지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보여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튀어나올 만한 조건이 어떤 것이며 주된 수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 줘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그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불안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아예 노출하지 않고 그의 정체를 차츰 밝혀 나가는 구성도 가능합니다. 주인공을 둘러싸고 뭔지 모를 괴상하고 공포스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도대체 이런 일들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 차근차근 알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포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주인공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인지가 명확히 드러나고, 주인공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나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같은 영화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 주인공과 관객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는 영화 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악마를 숭배하는 신흥 종교이든, 집에 깃든 원혼이든,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뒤틀린 심리든 이 기괴한 일들을 일으킨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밝혀 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장산범>이 간과한 점

이 영화 <장산범>의 초중반부가 지루한 이유는 이런 공포물 특유의 구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처음부터 ‘장산범’이란 무서운 존재의 이미지를 선명히 심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관객을 긴장시키지 못합니다. ‘장산범’이 등장하는 프롤로그가 있긴 하지만 장산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깃들어 있는 동굴을 소개하는 데 그칩니다. 따라서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동굴 근처에 갈 때만 긴장하게 되지요. 또한, 굳이 안 가도 되는 동굴로 등장인물들을 보내느라 다소 뜬금없고 억지스러운 설정까지 덧붙어 있어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 희연이 동굴 여행을 왔다든지 아니면 동굴 바로 근처에 생활 터전을 잡았다든지 하는 식의 설정이 아닌 이상, 지금 정도의 프롤로그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장산범의 수법이나 기괴한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후반부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이 괜찮게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도, 장산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관객에게 완전히 알려진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영화의 미스터리 구성이 공포의 대상인 장산범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희연의 과거사와 트라우마를 하나씩 천천히 드러내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르 특성상 이 영화에서 관객이 관심을 두는 것은 장산범의 정체지, 희연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가 아닙니다. 만약 이 영화가 희연의 심리 상태를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 일종의 사이코 스릴러라면 지금처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희연의 사연은 지금보다 훨씬 간단히 압축해서 보여 주고, 장산범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데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감독이 전작 <숨바꼭질>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비판, 즉 ‘도대체 손현주는 경찰에게 왜 신고를 안 해서 화를 자초하나?’라는 질문을 의식한 듯한 설정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예 희연이 과거에 겪은 일 때문에 경찰 자체를 불신하게 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그녀가 경찰에 연락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해 버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이렇듯 개인적인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 정도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도 등장인물처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개연성에 대한 질문이 안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애초의 발상이 좋다고 그것을 고수하며 어떻게든 말이 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최선의 장면을 위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합니다. 영화의 목표 — 장르적 쾌감이든 주제 의식이든 — 에 맞춰 모든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가면서요. 좋은 감독이 될 가능성을 보여 준 신예로서, 허정 감독이 앞으로 더 나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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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2017. 8. 15. 개봉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를 보러 가는 관객이라면 무더위를 날려 버릴 만한 쾌감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웬만하면 평균은 가는 재미를 선사하던 할리우드가, 이번에는 또 어떤 거로 즐거움을 줄까 궁금해하면서요.

이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앞서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과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에 이은 새로운 <혹성탈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2편의 시점에서 2년의 세월이 지난 후, 시저(앤디 서키스)가 이끄는 유인원들은 숲속 요새에 은거하며 인간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치열한 전투 끝에 특수 부대의 공격을 물리친 유인원들은 시저의 지시에 따라 포로로 잡힌 인간 병사를 풀어 줍니다.

하지만 시저가 베푼 호의는 오히려 특수부대 지휘자인 대령(우디 해럴슨)이 기습할 기회를 허용합니다.  대령의 공격에 가족과 동료를 잃은 시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복수를 완수하고, 유인원들을 새로운 터전으로 무사히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편과 2편에 비해 인간의 비중이 좀 더 줄어들고, 유인원들 사이의 교감과 연대에 더욱 주목한 것이 이번 3편의 특징입니다. 시저를 중심으로 더 단단하게 결속된 유인원들은 갖은 고초에도 절망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 줍니다.

2편에 이어 연출을 맡은 감독 맷 리브스는 이번에는 각본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2편에서와같이 시저에게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과 같은 내적 갈등을 부여합니다. 또한, 성서의 모세처럼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동족을 구출하는 여정을 겪게 하지요. 대령 역시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큰 영향을 미친 소설 <암흑의 핵심>의 중심인물 커츠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렇게 서구 문학 전통의 인간형을 적극 활용할 뿐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 역시 문학적입니다. 의미심장한 대사를 활용하고, 물 밑에서 벌어지는 캐릭터들 간의 감정 교류, 그리고 시저의 심리 묘사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 블록버스터에 기대할 만한 볼거리는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나마 유인원을 세밀하게 재현한 CG 기술력이 좋고, 앤디 서키스를 비롯한 유인원 역할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것이 볼 만합니다.

신화적 캐릭터, 지루한 이야기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이야기로서 재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시저가 중요한 순간마다 내리는 결정은 극의 방향을 좌우하지만,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문제를 키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잘 하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일이 꼬이고 상황이 어려워져야 인물에 대한 연민도 생기고 감정 이입이 가능해지는 것인데, 이 영화의 각본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저 정해진 줄거리를 따라 결말을 향해 ‘장엄하게’ 나아갈 뿐이죠.

시저의 반대 세력인 대령과 그의 부하들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게 보여야 탈출의 쾌감도 커지는 법인데, 대령의 부대는 규모도 작을뿐더러 감시도 허술합니다. 또한 시저와 유인원들은 자신의 힘으로가 아닌, 다른 인간 전투 부대나 눈사태 같은 외부적 요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요. 누구나 시저와 유인원들이 당연히 살아남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 심심하니 흥미로울 수가 없습니다.

신화가 오랫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는 원형적인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신화 속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습니다. 인물의 선택과 행동은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필연적입니다. 또한, 그 행동의 결과는 다음 상황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어 연쇄적인 사건의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잘 짜여 있기 때문에 기억하기 쉽고, 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도 쉬웠던 것입니다.

이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잘 알려진 신화적 모티프를 따오기만 했을 뿐,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의미는 있는 것 같지만 무척 지루합니다. 2시간 20분 동안 시원한 극장에 앉아 나름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만 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모를까, 표값에 걸맞은 쾌감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대부분 실망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한 달 이상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 제작비 1억 5천만 불에 조금 못 미치는 흥행 수입을 올리며 부진했던 것이나, 우리나라 극장가에서도 생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흥행을 노리는 상업 영화라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필수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엘리자의 내일 Bacalaurea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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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진진

2017. 8. 10. 개봉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너무 강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것이 쌓여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아이에게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자신의 인생이 있는 법인데, 거기에 부모가 늘 개입하게 되면 문제가 안 생길 리 없겠죠.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딸의 장래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루마니아의 의사 로메오(아드리언 티티에니)에게 고교 졸업반인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라구스)는 자랑거리이자 희망입니다. 이미 영국의 2개 대학에 입학 허가와 장학금까지 받아 놓은 상태로, 졸업 시험만 잘 치르면 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엘리자는 시험을 앞둔 등굣길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다칩니다. 로메오는 엘리자가 입은 상해와 심리적인 타격도 신경 쓰이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이 엘리자의 졸업 시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입니다. 이를 알아챈 사건 담당 경찰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딸의 앞길을 열어 주고 싶은 아버지

영화는 딸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로메오의 며칠을 담습니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은 89년 루마니아 혁명 전후에 청년기를 보낸 이후 사회의 중추로 성장한 세대의 초상입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조국에 남아 열심히 살았지만, 그들의 나라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예전에 내렸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요. 그래서 자식 세대만큼은 더 많은 기회를 누리게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 386세대를 떠올리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들 역시 젊은 날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대부분 자신이 싸웠던 기성 세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2000년대 이후 조기 유학과 대안 학교 붐을 주도하면서 자식 세대가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한 것도 유사한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시절의 낙태금지법의 폐해를 다룬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의 소녀들>(2012)은 루마니아 한 수녀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 역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 모두 자기 나라의 치부를 선정적으로 다뤄서 서구 영화계의 시선을 끈 것이 크게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영화제들은 자기네와 다른 이국적인 삶을 그린 영화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야기의 출발로는 좋은 소재를 선택했지만, 그것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언급하는 데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다릅니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주제의 보편성이란 문제를 잘 해결한, 감독의 최고작이니까요.

극의 중반까지는 전작들처럼 루마니아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데 주력합니다. 이번에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인맥을 통한 청탁’입니다. 서로 편의를 봐 주면서 각자 이익을 챙기는 부패의 고리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로메오가 자신의 모든 노력과 계획이 어그러져 버린 상황에서 맞이하는 선택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좀 더 보편적인 언급을 시도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보다 판단력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더 정도가 심하면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하죠. 큰 성공을 거두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사실, 자녀의 판단력이 부모보다 낫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많을 수 있어도 인생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자녀의 판단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녀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부모 탓이라며 불평할 수 있는 빌미만 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자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기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요. 인간사의 많은 문제는 — 독재 정권이나 부정부패 같은 사회적인 문제부터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 같은 개인적인 갈등까지 — 사람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서 생깁니다.

신체적 성장을 마치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자신의 결정에 당당히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 말이죠. 그럴 때에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진정한 소통의 다리가 놓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에서 로메오가 한 일도 그런 것입니다. 로메오가 지난 며칠동안 한 고심과 분투는 엘리자와의 사이를 점점 벌어지게 했을 뿐이지만, 고작 반나절 만의 깨달음과 변화는 엘리자에게 행복한 웃음을 되찾아 줍니다. 자기가 벌여 놓은 골칫거리들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로메오가 졸업하는 딸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End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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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아트하우스

2017. 8. 10. 개봉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기억을 좋은 쪽으로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흑역사나 불리한 사실관계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좋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임의로 기억을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이런 자기합리화와 선택적 기억 능력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불편한 기억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거기서 나온 죄책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주인공 토니(짐 브로드벤트)가 겪는 일들을 통해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은퇴 후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그는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 다소 고지식한 노인입니다.

어느 날 첫사랑이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의 부고를 전하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녀가 자신에게 일기장을 하나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일기장은 고등학생 시절 토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드리안의 것이었죠. 토니는 이것을 손에 넣기 위해 베로니카와 연락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돌봐야 할 현재의 일상도 있습니다.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임신한 딸이 하나 있는데, 전처가 발을 다쳐서 출산 준비를 하는 딸을 그가 직접 뒷바라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토니는 전처를 만날 때마다 자신과 베로니카, 아드리언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이 영화는 2011년 맨부커 상을 받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줄리언 반즈는 <10과 1/2장으로 쓰는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 봐>, <플로베르의 앵무새> 등 대표작들이 국내에 모두 번역돼 있어 현대 영국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죠. 서로 다른 관점을 교차시키거나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실 역시 현재의 우리 삶만큼 유동적이며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능합니다.

아름다운 추억 속의 비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토니가 털어 놓는 과거의 기억들입니다. 매혹적인 연인 베로니카와의 빛나는 추억, 감수성 예민하고 무척 똑똑했던 아드리언과의 우정이 빚어내는 이중주는 영화의 전반부를 수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억 속에서 그토록 반짝였던 두 사람이 현재 토니의 삶 속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은퇴 후 시작한 빈티지 카메라 가게 정도가 베로니카의 흔적일 뿐입니다. 영화의 나머지 후반부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깊숙이 파헤칩니다.

토니 역할을 맡은 짐 브로드벤트는 영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답게 토니가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다소 주책맞게 질척거리는 모습부터 자신의 상황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의 내면 연기까지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덕분에 관객은 맘 편히 토니라는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의 베로니카 역할을 맡은 샬럿 램플링이나, 토니의 기억 속에서 사라 역할로 나온 잠깐 에밀리 모티머 역시 자기들의 이름값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 줍니다.

토니와 베로니카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빌리 하울과 프레야 메이버의 연기도 좋습니다. 토니의 억눌린 열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빌리 하울은, 또 다른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원작의 <체실 비치에서>(2018 개봉 예정)에서도 유사한 상황에 부닥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습니다. <선샤인 온 리스>에서 주인공 데이비의 동생 역할로 얼굴을 알린 프레야 메이버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베로니카를 매혹적으로 형상화합니다.

과거와 떼래야 뗄 수 없는 현재와 미래

흔히 ‘미래보다 과거를 더 많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늙은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말할 시간에,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되뇌고만 있다면 늙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를 얘기하더라도 그때의 실패와 잘못을 되새겨 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은 우리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는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고 또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이 영화 속의 토니도 수십 년이 지나 만난 베로니카에게 옛날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니는 예기치 않게 날아온 유언장 덕분에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기억을 교정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소중한 사람인 전처, 그리고 딸과의 관계에서 작은 발전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듯 인간을 규정하는 인과 관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고, 그것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꾸만 과거를 미화하고 합리화하고 싶은 본능을 잠시 거두고, 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게 자기 힘만으로 도저히 안 된다면 믿을 만한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의 좋은 예로는 뻔한 오판과 잘못을 반복하는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가, 전문직 종사자들입니다. 이들이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과거만을 껴안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자신의 한계와 잘못을 일깨워 줄 직언을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미 그런 사람들은 다 정리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듯, 자신의 과거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차분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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