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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American Hone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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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티캐스트

2017. 7. 13. 개봉

세계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성공에는, 80년대 중산층 청소년 성장 영화의 플롯과 정서를 빌려 와 슈퍼히어로 영화에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의 성장이란 테마는 잘만 만들면 폭넓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은 누구나 겪는 것이고, 사람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 성장을 필요로 하니까요.

이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역시 그런 성장물의 형식을 취하지만, 정규 교육 과정을 다니는 대도시 중산층 청소년이 아닌, 남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방 출신 하층 계급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릅니다.

스타(사샤 레인)는 이제 갓 성인이 된 18세 소녀입니다. 어린 동생들과 함께 마트 쓰레기통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들을 뒤지던 그녀는, 미니버스를 타고 마트로 들어온 제이크(샤이아 라보프) 일행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마트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맞춰 멋대로 춤을 추는 등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지요. 스타가 자기들에게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아본 제이크는 그녀를 따로 불러내서 같이 가자고 합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잡지 정기 구독을 받아 생활한다면서요.

스타는 초면에 곧바로 그런 제안을 던지는 제이크가 못 미더웠던지 일단 거절합니다. 하지만 틈만 나면 자신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아버지, 아직 많이 어린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스타의 일상에는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제이크 일행이 묵고 있는 모텔을 찾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종이 잡지 구독으로 먹고 산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스타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하는 잡지 판매 조직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펜으로 신청서를 써서 종이 잡지를 구독하게 만들고, 그걸로 먹고 산다고 하니 대번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듭니다. 주인공이 일종의 다단계 조직 아니면,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데 걸려든 건 아닐까 싶지요.

이들의 행동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잡지 구독을 매개로 한 구걸에 가깝습니다. 구독을 받아 내기 위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기도 하죠. 리더인 크리스탈(라일리 키오)은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여성으로서, 실적만 제대로 올리고 기본 규율만 지키면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조금 자유로운 방식의 앵벌이 조직으로서, 60년대 반문화 히피 공동체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여기에 속한 청년들은 떠나지 않습니다. 계속 숙소를 옮겨 다니면서 낮에는 잡지를 팔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지내는 삶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들 주인공 스타와 비슷하게, 여기서 나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요로운 미국 사회의 사각 지대에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청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음악입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빼곡히 채우는 인기 팝 음악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거나 춤을 추고, 남몰래 속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표현의 수단이니까요. 이들이 자연스럽게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이면에는 ‘그래도 이렇게 함께 지낼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이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국의 여성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이 영화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Jury Award)을 받음으로써, 영화제의 3등상에 해당하는 이 상만 세 번째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미 <레드 로드>(2006)와 <피쉬 탱크>(2009)로 두 번이나 받은 적이 있지요.

실제로 잡지 판매 조직을 1년여간 취재하여 극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캐스팅하여 현실감을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젊은이들의 특이한 생활과 그들을 통해 보이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 필치로 잘 담아낸 것이 돋보이는 점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갈등을 고조시키고, 때로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연출력도 좋습니다. 때문에 2시간 40분을 넘어가는 러닝 타임이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주연을 맡은 사샤 레인은 연기 경력이 없는 신예로서 휴가차 해변에 놀러갔다가 감독 눈에 들어 길거리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직업 배우를 능가하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감정 표현이 여러 장면에서 빛납니다. 신입인 스타를 가르치며 애증의 관계를 쌓아가는 제이크 역할의 샤이아 라보프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제이크란 캐릭터의 특징을 비교적 차분하게 잘 표현한 편입니다.

크리스탈 역의 라일리 키오는 출연 분량은 적지만 도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끕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손녀로 유명한 모델 출신의 배우인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의 다섯 아내 중 하나로 나왔었고, 앞으로 공개될 스티븐 소더버그와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등 앞으로의 활약을 더 기대해도 좋을 배우입니다.

미국 사회의 그늘과 사회적 삶에 대하여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스타가 잡지를 파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입니다. 남는 건 시간과 돈 뿐이라는 부자 중년 남성들과 위선적인 중산층 주부들, 돈은 많이 벌어도 격무로 인해 돈 쓸 시간이 없는 유전 노동자들, 마약 중독자 부모를 둔 탓에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가난한 지역 아이들의 모습 등은 미국 사회의 다채로운 민낯을 생생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미국 사회와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대부분 할리우드의 주류를 차지하는 리버럴한 백인 중산층 남성의 관점을 취한 것일 때가 많지요. 그런 점에서 국외자인 영국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스타가 이들과 정서적, 경제적 원조를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스타가 포용력 있고 가정적인 트럭 운전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앞으로의 꿈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거나, 잡지 구독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거의 방치된 채로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자기 돈을 들여 텅빈 냉장고를 가득 채워 준다든지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일구어 낸 거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공에는 가족들의 협력과 희생, 국가가 제공하는 기반 시설과 공공 서비스의 혜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최근 큰 물의를 빚었던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학교 급식 노동자에 대한 몰상식한 발언이나, 프랜차이즈 경영자들의 각종 일탈 행동들도 따지고 보면 그런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도와 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인식하고 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죠.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청년들은 국회의원이나 변호사, 혹은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며 고작 남들의 호의에 기대 살아가는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들은 삶이란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필름 누아르 특별전 (2017. 7. 6.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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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필름 누아르는 할리우드의 1940년대와 50년대를 풍미한 영화적 스타일입니다. 범죄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내면의 어둠을 다루는 이야기, 밤 장면과 강렬한 명암 대비가 인상적인 화면 스타일,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여성(팜므 파탈)이나 비정상적 행동을 거리낌없이 일삼는 남성의 존재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 누아르라고 하면 갱스터가 등장하는 범죄물을 떠올리지만, 원래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스타일이자 세계관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필름 누아르로 분류되는 영화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밀드레드 피어스>(1945) 같은 가족 멜로드라마부터 <안녕, 내 사랑>(1944) 등의 하드보일드 탐정물, <이중 배상>(1944) 같은 범죄물, 심지어 <선셋 대로>(1950)처럼 딱히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영화들까지 필름 누아르의 자장 안에 있었습니다.

필름 누아르가 득세했던 이유로는 40년대와 50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에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연달아 투입되면서 인력 부족으로 인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풍조, 참전 용사들의 전쟁 트라우마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서 불거지는 사회 문제에 대한 불안감 등은 필름 누아르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스타일 면에서는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직전과 전쟁 중에 미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독일 감독들의 미장센과 주제 의식은 할리우드 영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명한 명암 대비 및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여 종종 과장되기도 하는 미장센, 쉽게 해명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 내면의 어둠 같은 것들이 그 예입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는 필름 누아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중 배상>(1944)과 <열차 안의 낯선 자들>(1951)의 시나리오를 썼고, <빅 슬립>(1946), <안녕, 내 사랑>(1944), <호수의 여인>(1947) 등 이 경향을 대표하는 탐정물의 원작자였으니까요. 작은 이익 앞에서 속절없이 허물어져 가는 인간 본성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필름 누아르의 주된 정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7월 6일(목)부터 23일(일)까지 ‘다크 시티: 필름 누아르 특별전’이라는 제목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나온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 영화 13편을 소개합니다. <이중 배상>-<밀드레드 피어스>-<선셋 대로>-<키스 미 데들리> 등 이미 여러 번 소개된 작품들과 더불어 새롭게 복원된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번 상영에서 꼭 챙겨 봐야 할 걸작 4편을 소개하고 몇몇 눈여겨 봐야 할 작품들을 간단히 짚어 보겠습니다.

[하나]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4)

보험사 직원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레이)는 자동차 보험 갱신을 위해 어떤 남자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없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의 아내인 필리스(바바라 스탠윅)만 있습니다. 필리스는 월터에게 자기 남편을 살해하고 보험금을 가로채자는 제안을 하고, 두 사람은 남편을 속여 특정 상황에서 사망 시 보험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는 특약 사항이 담긴 사고 보험에 가입하게 만듭니다.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혀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부추기는 여성, 초조와 불안에 떠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 인상적인 밤 장면 등 필름 누아르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걸작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매력적인 각본과 빌리 와일더의 빈틈없는 연출, 바바라 스탠윅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돋보입니다.

[둘] <선셋 대로>(1950)

몇 편의 B급 영화 각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조셉 길리스(윌리엄 홀든)는 단돈 몇백 불이 없어 차를 압류당할 처지입니다.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영화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만 번번히 허탕을 치고, 추심업자들의 추적을 피하려다가 우연히 무성 영화 시절의 톱스타였던 여배우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의 대저택에 들어가게 됩니다. 충직한 집사 맥스(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보살핌 아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며 살아가는 노마는, 조셉이 시나리오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읽어 봐 달라고 하며 그를 고용합니다.

독일 출신의 빌리 와일더 감독은 <이중 배상>과 <잃어버린 주말>(1945)에 이어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 때문에 파멸을 맞는 주인공을 다룬 걸작 필름 누아르로 자신의 감독 경력을 탄탄대로에 올렸습니다. 할리우드의 업계 관행을 사실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다룬 이 영화의 터치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독보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셋] <키스 미 데들리>(1955)

사립 탐정 마이크 해머(랠프 미커)는 차로 밤길을 달리다가 묘령의 여인을 태우게 됩니다. 어딘가로부터 도망쳐 나온 것처럼 보이는 여인은 암호 같은 말들만 늘어 놓더니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하죠. 그러나 두 사람은 거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괴한들에게 붙잡히고, 고문을 당한 여인은 살해 당하고 맙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마이크 해머는 이 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행동에 나섭니다.

미키 스필레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서, 마이크 해머라는 저돌적인 캐릭터와 교묘하게 꼬인 스토리를 잘 풀어낸 로버트 알드리치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가 기사도 정신을 갖춘 로맨티스트였던 것에 비해, 미키 스필레인의 마이크 해머는 남성 우월주의를 감추지 않는 좌충우돌 행동파로서,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상업 소설화를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넷] <밀드레드 피어스>(1945)

해변의 주택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밀드레드 피어스(조앤 크로포드)는 형사 앞에서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자신의 파란만장하고 억척스런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와 그녀의 딸 베다 사이에 얽힌 악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부분의 필름 누아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남자를 유혹하여 수렁에 빠뜨리는 팜므 파탈이거나, 이상 성격의 소유자인 남성의 희생물인 경우가 보통이었죠.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여성 주인공의 이상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임스 M. 케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토드 헤인즈 감독이 2011년에 동명의 미니시리즈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리타 헤이워드가 팜므파탈의 전형을 보여 준 <길다>(1946), 쌍둥이 자매 중 누가 진짜 범인인지 밝혀 내는 과정이 흥미로운 <검은 거울>(1946),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 부부의 앙상블이 빛나고 시작부터 한 시간 가까이 1인칭 시점을 고수하는 점이 특이한 <어두운 통로>(1947), 의심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을 다룬 <고독한 영혼>(1950), 스케일은 작지만 빛과 그림자 및 소리를 잘 활용한 폭력 장면들이 돋보이는 <빅 콤보>(1955) 등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http://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Spider-Man: Homecom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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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7. 5. 개봉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엑스맨> 시리즈와 더불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이전에 가장 성공한 마블 코믹스 출신 슈퍼히어로 영화였습니다.

샘 레이미가 만든 <스파이더맨> 3부작은 성장물이자 멜로물로서의 재미, 화려한 볼거리를 갖춘 수작들이었고, 리부트되어 2편까지 나왔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도 로맨스가 다소 강조된 측면은 있지만 여전히 화려한 액션 장면을 선보이며 그럭저럭 기대에 부응한 편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리부트된 <스파이더맨: 홈 커밍>은 MCU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파이더맨 단독 작품으로서,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의욕 넘치는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몇 개월 전,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출을 받고, 어벤저스 멤버들끼리 대결을 벌였던 ‘시빌 워’에 참가하여 얼떨결에 활약을 펼친 바 있습니다. 그 때의 흥분과 설렘을 잊지 못하는 피터는 또 다시 출동할 날만을 기다리지요.

하지만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고, 피터는 학교에서 괴짜 취급을 받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뉴욕 도심의 ‘이웃집 슈퍼히어로’로서 소소한 사건들을 처리하며 조바심을 달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는 괴력을 발휘하는 무기들이 암거래 된다는 사실과 이를 배후 조종하는 악당 벌처(마이클 키튼)의 존재를 알게 되지요.

인상적인 도입부와 결말

핸드폰 녹화 영상을 활용한 현란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영화의 도입부는, 피터의 설렘과 기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경쾌하게 알립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그와 반대로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는 피터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요. 이렇게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듭니다.

결말 부분도 훌륭합니다. 후반부로 접어드는 전환점과 절정 부분, 그리고 엔딩까지 단숨에 밀어붙이는 힘이 좋습니다. 이는 반전의 등장과 함께 극에 대한 집중도가 확 높아지고, 절정부에서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피터 파커가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긴 부분을 차지하는 중간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피터의 학교 생활과 벌처 패거리에 대한 추적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종종 늘어진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워싱턴 기념탑 액션, 층고가 낮은 교외 주택가에서의 추적 씬, 최신 기능이 적용된 수트 등 이전의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 나름의 볼거리를 주긴 하지만, 이전 시리즈들이 보여 준 시각적 쾌감에는 못 미칩니다.

피터 파커가 맞이할 역설적인 운명을 관객들이 극의 중간쯤에서 미리 알게 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좀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플롯을 짰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피터 파커의 학교 생활과 고독한 추적 과정 사이의 연관성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좀 더 짜임새 있는 전개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주연을 맡은 톰 홀랜드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고, <더 임파서블>에서 나오미 왓츠의 아들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 바 있는 영국의 차세대 배우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이어 두 번째 스파이더맨 연기를 하게 됐는데, 인정 욕구 강한 새로운 피터 파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당장 모두에게 인정 받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만 그것을 억눌러야 할 때, 최선을 다했으나 일이 자꾸만 꼬여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등 캐릭터의 핵심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돋보입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에서 배트맨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키튼은 악당 역할로 슈퍼히어로 영화에 복귀했습니다. 그가 맡은 아드리안 툼즈-벌처는 스파이더맨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토니 스타크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백인 장년 남성으로서, 피터 파커가 극복해야 할 기성 세대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 줍니다.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젊은 세대의 진정한 성장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들이 규정한 틀에 갇혀 있기가 쉽습니다.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깊숙히 내면화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대부분이 기존 체제로부터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떤 체제나 조직이든 가장 인정받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어진 규칙을 넘어서서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 사람들이 가장 큰 보상을 얻습니다. 미국의 IT 업계가 그 좋은 예입니다. 자신의 삶을 정해진 코스대로 따라간 모범생들보다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 방정식을 풀어낸 사람들이 더 큰 혁신을 일으키고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의 피터 파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멘토인 토니 스타크가 설정한 틀 안에서만 행동했지만, 결국 그가 더 발전하고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그 틀을 깨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피터가 토니의 만류에도 벌처를 추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기성 세대가 부여한 편의를 상징하는 새 수트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임무에 헌신하며, 가족의 안위를 생각해서 조용히 있으라는 벌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싸움에 나서는 모습은 이런 식의 ‘성장’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줍니다. 엔딩 장면에서 피터가 내리는 결정은 그런 맥락에서 보면 아주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전의 시리즈들이 이미 나름의 성과와 볼거리를 탄탄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리부트되었지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그에 굴하지 않고 ‘기존의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뛰어넘은 젊은 세대의 성장물’로서 색깔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이전 시리즈들에 비해 볼거리는 덜하고 다소 지지부진한 전개를 보인 것은 아쉽지만, 새롭게 돌아온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옥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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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2017. 6. 29. 개봉

봉준호 감독의 여섯번째 장편 <옥자>가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넷플릭스로부터 5천만불 전액 투자를 받은 이번 작품은 상영 방식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요.

사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주요 극장 체인에서 상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논쟁의 규모가 다소 과하게 커진 감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죠.

할아버지(변희봉)와 함께 사는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는 다국적 대기업 미란도로부터 분양받은 슈퍼 돼지 옥자와 함께 10년을 보내 왔습니다. 덩치는 산더미 같지만 정 많고 순한 옥자는 미자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미란도에서는 애초부터 10년 기한 국제 이벤트용이었던 옥자를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수해 가 버립니다. 그 때까지 할아버지가 옥자를 회사로부터 샀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한 여정에 나섭니다.

<옥자>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공개되기 전의 기대감과 화제성에 비하자면 미지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스크린 수 자체가 100개 내외로 적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흥행 수치를 내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영화 자체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려서, 이만하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라는 반응과, 극장에서 못 봐서 아쉬울 정도의 명작은 아니라는 얘기가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아쉽다고 생각한 쪽입니다.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던 이유가 장르적 이야기가 주는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실히 해냈다는 점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터뷰들을 봐도 애초부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장르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좀 더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이야기의 재미와 장르적 완성도 문제를 자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봉준호 감독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쪽의 고민과 성찰을 하지 않았을리 없으니까요. 모든 것을 고려했음에도 그의 선택이 이런 것이라면 제작 의도를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잘 만들어져 있느냐를 살펴보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 인터뷰들을 참고했을 때 감독이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동물을 참혹하게 도살해서 상품화하는 일에 대해 무신경한 세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 풍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감독은, 옥자라는 생명체를 각각 인생의 동반자-이념적 상징물-상품의 원재료라고 생각하는 미자-ALF-미란도 그룹을 등장시킵니다.

완성도 높은 미자와 옥자의 교감, 그러나

먼저, 미자의 관점은 관객에게 가장 호소력이 강합니다. 도입부에서 함께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옥자와 미자의 모습, 그리고 위험에 처한 미자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옥자를 인상깊게 다룬 액션 장면 등은 이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것입니다.

가상의 슈퍼 돼지 옥자의 디자인에 신경쓰고 질감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 역시 옥자를 향한 미자의 감정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감독의 주제 의식이 확실히 잘 반영된 것으로서, 확실히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정서적 깊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나머지 두 축을 이루는 ALF와 미란도 그룹을 소개하고 다루는 방식은 미자와 옥자의 관계만큼 심사숙고하지는 못한 듯 다소 평범하고 사려깊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ALF의 경우, 감독은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이상적인 가치를 위해 싸우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했다’는 정도의 우호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만약 그런 의도가 깔려 있지 않았다면, 이들이 극의 여러 주요 전환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쿠키 영상을 통해 따로 코멘트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감독에게 이들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아닙니다. 실수도 하고 허술하지만 장점도 분명히 있는 해학과 연민의 대상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독의 입장에는 동의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누군가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으니까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옥자가 강원도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취한 행동이 선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슈퍼 돼지 알폰소에게 성적으로 공격당하는 옥자의 모습을 몰카로 촬영하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미란도의 만행을 폭로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옥자가 겪는 수난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지만, 옥자가 영화 속에서 사람과 유사한 인격체로 묘사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강간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2차 가해’나 다름 없는 장면이었거든요.

감독은 이런 부분이 별로 거슬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신, ALF에게 우리나라 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이미지를 덧씌워 그들의 이상과 열정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미란도의 용병들에게 붙잡히는 ALF의 모습에 슬로모션을 걸고 애상적인 음악을 깔아 감상적으로 보여 준 것은 그런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입니다.

감독이 보는 현대 자본주의는?

미란도 그룹 같은 경우에는 묘사가 피상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움직이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감독 나름의 통찰은 없습니다. 이미지 조작이나 권력 투쟁에 몰두할 뿐 경영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세습 자본가들의 행태에 대한 식상한 풍자만 있을 뿐이죠.

미란도는 다국적 기업이면서도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진짜’ 자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돼지를 6, 7개월만 키워 시장에 출하하는 게 일반적인 축산업계 관행임에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10년짜리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엽니다.(물론 이것은 감독이 미자-옥자의 10년 짜리 관계를 위해 설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쌍둥이 자매 루시-낸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간의 경영권 분쟁도, 자본주의의 양면을 보여 주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란도 그룹이 GMO 슈퍼 돼지를 만들고 공장식 축산을 함으로써 어떤 금전적 이득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감독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 이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도살 공장의 풍경에 대한 감상은 ‘참으로 탐욕스런 자본주의가 모든 걸 망치는군’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동물을 이렇게 끔찍하게 취급하고 있다니’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이 영화 <옥자>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보여 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제 의식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영화가 구축되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옥자의 캐릭터 디자인과 미자가 옥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형상화했지만, ALF와 미란도 그룹을 그리는 방식에서는 예술가 다운 사려깊음과 통찰력이 부족했습니다. 보다 예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해서 구축했어야 할 요소들을 나이브하게 처리한 바람에, 메시지가 약화되고 극의 집중도가 떨어진 점이 참 아쉽습니다.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면, 메시지를 더 갈고닦고 그것의 내적 논리를 더 꼼꼼하게 챙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의도가 너무 뻔한 몇몇 시각적 설정과 디테일을 챙기는 대신에요. 이 영화가 미국 기준으로 TV-MA(18세 이상의 성인 대상 프로그램) 등급을 받았지만, 성인을 위한 동화 혹은 아동 영화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것을 되새겨 봐야 할 것입니다.

지랄발광 17세 The Edge of Seventee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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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6. 28. 개봉

한 개인의 온갖 부끄러운 흑역사는 거의 학창 시절에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을 되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신체적 성장이 마무리되고 점점 자의식이 높아져 가는 것에 비해서, 인생 경험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편협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였죠.

요즘엔 흔히 ‘중2병’이라고 부르는 이 사춘기 증상은 사람마다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릅니다. 여러가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질 때에야 이 증상이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게 잘 안된 상태에서 나이만 먹으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괴로워집니다.

이 영화 <지랄발광 17세>의 주인공 네이딘(헤일리 스테인펠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인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자신이 외톨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모두에게 호감을 받는 한 살 위의 오빠 대리언(블레이크 제너)과 자기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런 그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은 까탈스러움을 잘 받아 준 아버지와, 단짝 친구 크리스타(헤일리 루 리처드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열세 살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크리스타가 네이딘에게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었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런 그녀가 밉살맞은 오빠 대리언과 사귀기기로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네이딘은 크리스타마저 오빠 편이 돼 버렸다는 생각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네이딘의 삶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주인공의 끝없는 방황

인기 없는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류의 하이틴 영화들은, 흔히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봐 주는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식의 로맨스 플롯을 따라갑니다. 초반 인물 설정으로 볼 때, 이 영화도 역시 그런 식의 전개가 이어질 것이 충분히 예상되지요.

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주로 보게 되는 것은 네이딘의 끝도 없는 방황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대단히 뛰어난 유머 감각과 관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겐 더 멋진 남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번번이 잘못된 결정과 경솔한 행동을 거듭합니다. 이런 과정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데, 우리말 제목으로 붙인 ’지랄발광’이란 말이 정말 딱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켈리 프리몬이 이렇게 자신의 주인공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면서 끝장을 보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의 삶이 왜 이렇게 비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아 봐 줄 이상적인 애인과의 결합이 모든 것을 해결해 버리면, 정작 네이딘의 진짜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해 볼 시간은 없어지니까요.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었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이만큼 가슴 찡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네이딘의 뻘짓을 끝까지 보여 준 감독의 이런 뚝심 때문입니다. 그녀가 얻은 깨달음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생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1)로 인상 깊은 데뷔를 했고, 우리 관객에게는 <비긴 어게인>(2013)에서 마크 러팔로의 딸 역할로 좀 더 익숙한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맡은 네이딘이라는 역할은 자신의 평소 이미지와 비슷하긴 하지만 좀 더 자의식이 강한 인물인데다, 극의 특성상 전체를 혼자서 끌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감정을 무리 없이 잘 소화해낸 것이 돋보입니다.

현재의 인간 관계에서 시작하자

인생에서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남 탓을 하곤 합니다. 내가 이 사람의 가족만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이 내 업무 파트너로 오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좀 더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 내 단점보다는 장점을 특별하게 알아 봐 줄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입맛에 딱 맞게 행동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줄 ‘소울 메이트’가요. 하지만 마냥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거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이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여러 조건들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신이 이제껏 눈치채지 못한 것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쉬운 길입니다.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상대의 배려, 나에 대한 감정을 곱씹어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까지 해 봤는데도 이 사람들이 정말 내 감정을 착취하고 나를 이용하기만 한다 싶으면, 그 때 가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네이딘이 ‘중2병’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 역시 그랬습니다. 언제나 자기 감정에만 지나치게 충실하던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변화는 남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할 때 더욱 빨리 찾아 온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랄발광 17세>는 청소년 관객 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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