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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메이드 American Mad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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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I 코리아

2017. 9. 14. 개봉

각국 정보기관은 모두 국익을 위해 일한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소속 국가에 이익만 되면 뭐든지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민간인을 포섭하여 불법적인 행위를 돕게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이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의 주인공 배리 씰도 그런 식으로 정보기관의 일을 하게 됐습니다. 1978년, TWA 항공사의 기장인 배리 씰(톰 크루즈)은 반복되는 일상을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다를 뿐 매번 단조로운 비행을 해야 하고, 똑같은 안전 수칙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따분합니다. 그래서 쿠바산 시가를 밀수하는 일에 운반책으로 가담합니다.

어느 날, 자신을 CIA 요원이라 밝힌 남자 쉐이퍼(도널 글리슨)가 배리 앞에 불쑥 나타납니다. 그는 배리의 시가 밀수 건을 꼬투리 잡아, 자기가 추진하는 일에 지속해서 협조하라고 압박합니다. 그가 제안한 일은 비행기를 이용해 중앙 아메리카 공산 반군 조직의 실태를 근접 촬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항공사 근무는 포기해야 합니다.

고심 끝에 제안을 수락한 배리는 이 스릴 만점인 임무를 내심 즐깁니다. 비행기로 단숨에 날아가 반군의 총격을 피해 사진을 후다닥 찍고 돌아오는 일이 배리의 적성에 너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연료를 채우고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인근 마약밀매 조직의 리더들이 찾아옵니다. 비행기로 미국에 마약을 운반해 달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죠.

하늘에서 벌어지는 갱스터물

실존 인물이었던 배리 씰의 일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갱스터물의 이야기 공식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야심만만한 주인공이 찬란한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결국은 몰락하고 만다는 플롯을요. 다만 그 배경이 뉴욕이나 라스베이거스의 뒷골목이 아니라 루이지애나와 중앙아메리카의 하늘이라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리듬감과 풍자적인 블랙 코미디 톤으로만 따지면 역시 갱스터물의 이야기 구조를 취한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유사한 느낌입니다.

비행 장면들은 제작비에 비해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이 영화에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중남미의 열악한 활주로 상황을 극복해낼 때의 스릴이나, 감시망에 혼선을 주기 위해 루이지애나주 앞바다 멕시코만의 석유시추선들 사이로 날아다니며 마약을 운반하는 장면이 주는 후련함은 웬만한 블럭버스터 영화 못지 않습니다.

배리 씰은 사실 쉽게 감정 이입하기 힘든 캐릭터입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정보기관의 하수인이고, 어쩔 수 없는 희생자라기보다는 자발적 협조자로서 자신도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톰 크루즈의 매력은 관객이 이런 인물에 대해 느끼는 심정적 거리감을 많이 좁혀 줍니다. 나이를 잊은 듯 해맑은 표정은 마치 죄의식 없는 어린아이처럼 막 나갈 때가 있는 배리의 삶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CG와 특수효과가 난무하는 블럭버스터 영화에서는 잘 느낄 수 없었던, 배우로서의 매력을 온전히 감상할 기회였습니다.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극 전체를 관통하는 명시적인 갈등 구도가 없습니다. 물론 배리는 영화 내내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개별 갈등 상황은 극복하고 나면 그만이라서, 다음 상황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개가 느슨해지곤 합니다. 다른 주요 인물과 영화 내내 힘을 겨룰 굵직한 갈등 요소를 넣거나, 스스로의 내적 결함 — 과도한 욕심이든 심리적 컴플렉스든 — 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짰더라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80년대 미국 중남미 정책의 그늘

배리 씰이 겪는 ‘모험’은 78년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80년대 중반 레이건 시대까지 미국 중남미 정책의 양상을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좌파 반군에 대한 단순 정찰과 감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맞서는 반군을 조직하고 자금과 무기를 대는, 내정 간섭에 가까운 적극성을 띠는 쪽으로 확대됩니다. 그 결과 애초 의도와는 달리 마약 카르텔이 성장하는 등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이런 대외 정책 기조 속에서 배리에게 엄청난 일들을 사주하는 쉐이퍼는, 국가 기관이 권력을 얼마나 어이없이 남용하는지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쉐이퍼가 조직 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배리에게 제공한 예산은 절대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 분에 넘치는 특혜는 고스란히 배리의 가족과 마약 카르텔을 살찌우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모든 정보기관과 그 요원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익’이란 단어가 언제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나라의 기득권층이나 정권의 이익을 위해, 아니면 자신의 입신양명과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요즘 쟁점이 된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행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온라인 댓글 부대를 동원하고, 정권 초부터 문화 예술계 블랙 리스트를 작성해 직업 활동의 자유를 공공연히 침해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여론을 자기 입맛에 맞게 주무르면서 정권을 보위하고 보수 정권의 연장을 꾀한 것으로 ‘국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도 민간인 협력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깃털’들의 운명이란 정치적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쉽게 위태로워지기 마련입니다. 당시에는 명백한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절대 아무 문제 없을 거라 믿었겠지만, 이 영화에서 배리가 그랬던 것처럼 상황은 금세 바뀌고 맙니다.

국정원을 도와 불법을 저지른 이들이 미리 반성과 사죄, 양심선언 같은 걸 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순진한 바람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만무하니까요. 아무쪼록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수사가 철저하고 강력하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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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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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9. 14. 개봉

멋진 차에 센스 있는 여자친구를 태우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하는 남성의 모습은 현대 대중문화에서 수만 번도 넘게 반복된 이미지입니다. 이 닳고 닳은 장면이 아직도 애용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남성 대중의 소박한 로망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로 사회 경제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고,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여성이 손 닿는 데 있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한 호사입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런 판타지를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애틀랜타에 사는 청년 베이비(앤설 엘고트)는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절도범들의 도주를 돕는 전문 드라이버입니다. 외모만 보면 딱히 범죄자 같은 분위기는 풍기지 않습니다. 늘 이어폰을 꽂고 다니기 때문에 그저 음악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 같지요.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어떤 돌발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담력과 탁월한 운전 실력이 있습니다.

그는 늘 음악을 들으며 모든 것을 합니다. 작전을 수행할 때도, 커피를 사러 갈 때도, 집에서 양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할 때도 그렇습니다. 또래의 매력적인 웨이트리스 데보라(릴리 제임스)와 통한 지점도 둘 다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죠. 그는 절도 프로젝트 기획자 닥터(케빈 스페이시)와 약속한 횟수를 다 채우고 깨끗이 손을 턴 다음, 데보라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입니다.

대중적인 범죄 액션 판타지

이 영화의 기본 콘셉트는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와 유사합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똑같고 좋아하는 여성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범죄 세계의 현실을 비정하고 참혹하게 그린 <드라이브>가 더 취향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운전 실력이나, 진짜 범죄자들의 섬뜩하고 위험한 느낌을 더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베이비 드라이버>는 좀 더 대중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대나 20대 남성 관객들의 백일몽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것 같지요. 장르적 완결성이 높은 시나리오와 흥미진진한 자동차 액션, 그리고 언제 어디서 틀어도 인정받을 만한 음악이 어우러져 딱히 나무랄 데 없는 만듦새가 돋보입니다.

영국 출신 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 같은 영화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직접 쓴 각본은 닳고 닳은 장르적 이야기 구조 속에 독특한 캐릭터를 집어넣은 다음, 그가 점차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도록 몰아붙입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독특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동차 액션과 음악은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입니다. 베이비의 놀라운 운전 실력과 기지를 보여 주기 위한 도주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기발한 액션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되는 흥겨운 배경 음악 때문에 더욱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평범한 액션물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영화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합니다. 먼저 뮤지컬 영화처럼 영화의 모든 요소를음악에 맞춘 장면들이 눈길을 끕니다. 베이비의 춤에 가까운 몸짓,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을 전문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세심하게 매만진 효과가 잘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은 이야기 진행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베이비와 데보라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가 될 뿐만 아니라, 베이비와 다른 범죄자들 사이의 갈등의 씨앗을 뿌리기도 하니까요. 멋지고 듣기 좋은 음악들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OST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컴필레이션 음반입니다.

베이비 역할을 맡은 안셀 엘고트는 실제 DJ이자 가수로도 활동하는 배우입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DJ로 초청받은 적도 있습니다. 190cm가 넘는 거구이지만 해맑은 표정이 매력 포인트죠. 영화팬들에게는 <안녕, 헤이즐>에서 주인공 헤이즐과 사랑에 빠지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잃은 소년 어거스터스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디즈니 실사판 <신데렐라>(2015)의 주인공이었던 릴리 제임스는 데보라의 매력을 아주 잘 살렸습니다. 사실 말도 잘 통하고 상대의 장점을 금세 알아봐 주며 예쁘기까지 한 데보라는 남자가 원하는 이상형에 가깝습니다. 릴리 제임스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가 속출하며 전체적으로 붕 떠 있는 이 영화에 유일하게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케빈 스페이시와 제이미 폭스, 존 햄 같은 유명 배우들이 조연급으로 등장하면서 발휘하는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도 이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입니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이들 모두는 베이비와 치명적인 갈등을 빚으면서 이야기에 흥미진진함을 더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남자에게 성장과 변화란

우리가 아직 미숙할 때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그 체제 안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는 않는지 따져 볼 여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기고 점점 시야가 넓어지면 달라집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다가 아니며, 다르게 살아가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요.

이 영화에서 베이비가 궁지에 몰리고, 족쇄를 벗을 기회를 얻게 된 계기 역시 사랑하는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자신을 끝까지 돌봐 준 양아버지나, 자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데보라에 대한 책임감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으로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새 출발은 쉽지 않은 법입니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란 누구에게나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지금까지 맺은 인간관계와 그와 더불어 얽혀 있는 이해관계는 언제고 되살아나서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앞으로 달라질 삶의 풍경 한 조각을 마음속에 품고 묵묵히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 속의 베이비 역시 그랬습니다. 데보라와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 하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삶의 변화란, 이렇듯 치열한 고민과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어느 날 문득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17. 9. 6.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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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이마무라 쇼헤이는 <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두 차례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일본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입니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일본 문화 개방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1999년 이후가 되어서야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대체로 한국 관객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낼 때가 많았습니다.

1951년 일본의 3대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인 쇼치쿠에 입사해서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닛카츠 영화사로 옮깁니다. 당시 닛카츠는 메이저 영화사들과 독점 계약한 유명 감독과 배우 대신 신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었습니다. 닛카츠에서 조감독으로 몇 편의 작품에 더 참여한 이마무라 쇼헤이는, 1958년 한 해에만 <도둑맞은 욕정>을 비롯한 무려 세 편의 작품을 내놓으며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에 맞선 강한 삶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일본의 문화 전통에서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죽음과 삶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또한 삶과 같은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삶’에 방점을 두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의 정서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대중 예술 작품 중에서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결연히 맞서 싸우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죽음은 순수한 탐구 대상이거나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을 다룬 미스터리 장르가 발달한 것이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적 행위인 섹스를 물신화한 성적 콘텐츠의 범람, 잔혹한 폭력 묘사도 서슴지 않는 경향 등은 이런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들은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해 왔습니다. 그의 영화에도 죽음과 폭력, 섹스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자체를 감각적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최종 목표는 삶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또한 그는 영화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데뷔 시절부터 정교하게 잘 짜인 화면을 선보였는데, 점차 감독 경력을 쌓아가면서 파격적인 카메라 앵글과 실험적인 연출 기법을 덧붙여 나갔습니다. 현란한 표현 그 자체를 탐닉하는 쪽은 아니고,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9월 6일부터 24일까지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1979)으로 재기에 성공한 후 내놓은 후기 걸작들을 비롯하여, 초기와 중기 작품 대부분을 망라한 총 17편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이 중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봐 두면 좋을 작품 4편을 뽑아 소개합니다. 여기에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대표작 세 편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를 더한 최소 7편의 영화 정도는 언제든 챙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작품 소개와 상영 장소 및 일정에 관한 안내는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http://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끝없는 욕망>(1958)

오사카 히네노역. 가슴에 별표를 단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듭니다. 이들의 목적은 전쟁 당시 대량의 모르핀을 숨겨 놓은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재개발을 앞둔 상가 지역이 돼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남들의 이목을 피하고자 빈 집 하나를 임대한 후 땅굴을 파서 ‘보물’을 꺼낼 계획을 세웁니다.

이 작품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데뷔하던 해에 만든 두 번째 장편으로서, 서스펜스와 블랙 유머가 공존하며 잔혹한 묘사도 서슴지 않는 감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비슷한 컨셉의 장르물과 비교 헀을 때 이야기의 재미, 샷의 구성과 편집, 음악 등 완성도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만듦새가 돋보입니다. 재물 그 자체에 눈이 어두워 무슨 짓이든 하는 주인공들과 평범한 삶의 행복을 바라는 젊은 커플을 대비시켜,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지 관객에게 반문합니다.

[둘] <돼지와 군함>(1961)

미 해군이 주둔한 요코스카의 유흥가에서 살아가는 킨타(나가토 히로유키)는 지역 야쿠자 조직의 말단 조직원입니다. 조직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활용하여 돼지를 키우는 사업을 시작하자, 킨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나중에 받을 보너스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여자친구 하루코(요시무라 지츠코)는 그런 킨타를 못마땅해 하며 다 관두고 더욱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를 바랍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범죄 조직에 몸담은 애송이 주인공의 이야기는 무척 흔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배경을 미군 주둔지의 유흥가로 두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습니다. 패전 후 미 군정에 의해 연명하게 된 구체제의 인물들이 여전히 일본의 실권을 쥐고 있고, 이들의 탐욕이 젊은 세대의 앞날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비판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초기작 대부분에 출연한 나가토 히로유키와, 후에 공포물 <오니바바>(1964)로 명성을 얻게 되는 요시무라 지츠코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돋보입니다. 잊을 수 없는 엔딩 시퀀스와 미군 병사들에 끌려간 하루코의 호텔 방을 보여 주는 씬 등 영화 표현 기법상으로도 눈여겨볼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셋] <일본 곤충기>(1963)

시골 벽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메(히다리 사치코)는 집안의 궁핍함 때문에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지주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기도 하고, 방직 공장에 다니기도 하며, 전후에는 도쿄로 나와 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매춘업에 종사하게 된 도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주로서 사업적 역량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뒤이어 나온 <붉은 살의>(1964)나 <인류학 입문>(1966) 같이 강인한 여성의 생명력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남성-죽음-쾌락을 위한 섹스와 여성-삶-생존 수단으로서의 섹스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부각합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대는 광범위하지만, 생애의 단계별로 중요한 순간들을 압축해서 보여 주고 정지 화면 등을 활용한 과감한 화면 전환을 선보이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히다리 사치코는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자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넷] <검은 비>(1989)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있던 시즈마 부부와 조카 야스코는 원폭 투하로 인한 끔찍한 참상을 몸소 겪은 바 있습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은 건졌지만, 탈출 과정에서 방사능 낙진을 맞은 그들은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원폭 피해 후유증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시즈마 부부는 야스코가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영화 초반 원자폭탄으로 인한 히로시마의 참상을 다룬 시퀀스는 그 끔찍함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눈에 띄는 특수 효과 없이 처참한 상황에 겪는 인간 군상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원폭 생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도 없는 일본 사회의 무기력과 대비되면서 반성을 촉구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많이 쇠약해진 야스코가 저수지에서 솟구치는 물고기의 모습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장면이 그토록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의 강한 의지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회 현실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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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2017. 9. 6. 개봉

*원작 소설과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TV 드라마는 무수히 많습니다. 최근에 <언더 더 돔>과 <11/22/63>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방영 중입니다. 몇 주 전에 개봉한 영화 <다크 타워>도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그것>은 스티븐 킹이 1986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번역본 기준으로 약 1800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팬들 사이에서 스티븐 킹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미국 메인주의 데리라는 동네에 사는 열 살 소년 빌(제이든 리버허)은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동생 조지에게 종이배를 만들어 줍니다. 조지는 도로변에 흐르는 빗물에 종이배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며 신나게 놀다가 그만 배를 하수구에 빠뜨립니다. 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 하수구를 들여다본 조지는 피에로 모습을 한 괴물에게 잔혹하게 공격당한 후 실종됩니다.

이듬해 여름 방학, 여전히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빌은 늘 악동들의 표적이 되는 다른 친구 여섯 명과 끈끈한 우정을 쌓습니다. 이들은 그간 데리에서 27년을 주기로 끔찍한 참사와 어린이들의 연쇄 실종 사건이 일어났으며, 조지의 죽음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원작 소설이 방대한 분량이고, 주인공들이 30대 후반으로 성장한 현재와 열한 살 어린 시절의 과거를 오가는 구성이기 때문에 2시간 내외의 영화 한 편에 모든 것을 다 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번에 개봉한 <그것>은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다룬 1부입니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겪는 일들은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2부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생생한 공포 체험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공포 체험의 묘사가 뛰어납니다. 원작에 기반을 둔 것도 있고, 영화에서 새롭게 집어넣은 설정도 있는데 양쪽 다 충분히 효과적입니다. 스티븐 킹이 원작에서 보여 주었듯, 아이들의 공포는 결국 부모에 대한 인정 욕구와 애증, 그리고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서 나온다는 점을 제대로 형상화했습니다.

여기에는 촬영과 특수 효과, 낯선 아역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인 정정훈 촬영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포의 강도를 높입니다. 스탠리가 기울어진 액자에 담긴 귀신을 만날 때나 에디가 한센병 환자를 만나 기겁하는 장면처럼 특수 효과가 없이도 충분히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요.

순수한 악의 표상인 페니와이즈의 여러 가지 끔찍한 모습을 디자인하고 구현한 CG와 특수효과에서는 다른 호러물들과 차별화된 이 영화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명의 아역 배우들 역시 생각 이상의 안정된 연기로 영화 속 인물이 느끼는 공포를 아주 생생하게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성장과 연대는 생각만큼 두드러지지 않은 편입니다. 원작의 훌륭한 에피소드들이 빠지거나 하나로 합쳐진 탓도 있고, 어른이 된 이후의 모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원작에서만큼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원작에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무슨 일이든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제가 어린 시절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깔렸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무엇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희열이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중반 이후 아이들의 대사를 통해 주제를 직접 제시하기 때문에 약간 뜬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말에서 페니와이즈를 물리치는 장면도 힘을 합친다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집단 린치처럼 연출돼 있어서 카타르시스가 덜합니다.

‘루저 클럽’의 유일한 흑인 마이크의 역할이 축소되고 벤에게 그 역할이 돌아간 것도 아쉽습니다. 원작에서 마이크의 역할은 주기적으로 부활하는 페니와이즈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알려 주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데리에 남아 그 부활 여부를 확인한 후 친구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것이었죠. 스티븐 킹은 그간 데리에서 벌어졌던 참사들이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고 그 증언자로서 마이크를 설정해 두었던 것인데,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까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1990년에 2부작 TV 드라마로 제작된 <피의 피에로>(It)와 비교해 보면 아쉬움은 좀 더 커집니다. 특수 효과가 매우 어설프고 TV용이라 표현의 한계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원작의 구성을 유지하면서 인물들 사이의 감정 교류를 이 영화보다는 잘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애초 기획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로 1편을 만들고 나서 시장 반응을 본 후 2편 제작에 착수할 생각이었던 것 같으니까요. 홍보 과정에서 이번 영화가 2부작의 1부라는 것을 충분히 밝히지 않은 점,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어른이 된 모습 없이 어린 시절만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추구한 점을 보면 그런 짐작이 가능합니다.

치유와 성장, 2부에서 계속된다

최근 들어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미국의 저예산 공포 영화들은 악령 같은 끔찍한 외부의 존재가 인간에게 가하는 테러 자체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악령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가슴 졸이게 하는 장면들과 스릴 넘치는 대결 장면을 넣어, 마치 테마파크의 놀이 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쏘우> 시리즈와 <인시디어스>-<컨저링> 시리즈를 만들어 온 감독 겸 제작자 제임스 완은 이런 경향의 대표 주자입니다.

이 영화 <그것>은 이런 최신 경향과는 결이 조금 다른 영화입니다. 절대악이 존재하고 그와 대결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인 것은 같지만, 인물이 겪는 끔찍한 일들은 결국 내면의 공포가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짚어내는 것이 다릅니다.

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빌, 유대인으로서 사는 삶이 주는 부담을 가진 스탠리, 자신을 과보호하는 어머니에 대해 애증을 지닌 에디, 아버지의 성추행이 자기의 신체적 성숙에서 비롯되었다는 죄의식을 가진 베벌리 등은 모두 ‘그것’의 먹잇감이 될 뻔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그것’과 맞서 싸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신의 심리적 결함을 극복하려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심리적 문제를 혼자 해결해 보려다 아예 생활이 망가지거나 목숨까지 잃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겨내기가 정말 힘듭니다.

또한, 내면의 상처는 한두 번 이겨내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한참 더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상처는 언제든 되살아나서 우리의 삶을 망치려 듭니다. 원작에서 주인공들이 27년 후에 데리로 돌아와 다시 한번 페니와이즈와 벌이는 대결은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그 운명을 건 사투는 2019년에 공개될 2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 – 스티븐 킹

 

90년대 초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 붙은 신작 포스터를 오며 가며 눈여겨보던 사람이라면 괴상한 피에로가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기억할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피에로의 얼굴 밑에 ‘IT’이라는 영어 원제가 크게 써 있음에도 굳이 <피의 피에로>라는 우리말 제목을 붙여 놓은 것이 더욱 기괴했죠.

나중에 20대가 되어서야 이 잊을 수 없는 포스터의 원작 소설이 바로 스티븐 킹의 <그것>(It)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설을 굳이 찾아서 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비디오로도 잘 안 빌려 봤던 공포물을,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고 영화 일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준급 장르 소설들을 찾아 읽다 보니, 어느덧 스티븐 킹의 최고 걸작이라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일단 번역본 기준으로 600쪽 내외의 두꺼운 책 3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또한 그 당시까지 스티븐 킹 소설은 영화로만 봤지 책으로 읽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권을 펼쳐 들자마자 곧 ‘이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만나게 될 스티븐 킹 책들이 대부분 그랬듯, 한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찬찬히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그런 책이었지요.

비오는 어느 날, 미국의 메인 주 데리에 사는 열 살 소년 빌 덴브로는 동생 조지에게 종이배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조지는 비가 흥건한 도로변에서 배를 띄우고 놀다가 배수구에 배를 빠뜨리고, 이것을 꺼내려다 끔찍하게 살해당합니다. 빌은 조지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어른이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한 빌과 그의 친구 여섯 명은 옛 친구 마이클이 건 전화를 받습니다. 빌의 동생 조지를 살해하고 데리 전체를 공포로 물들인 존재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죠. 빌과 그의 친구들은 열한 살 나던 해에 잊지 못할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전화 통화 후 곧바로 자살을 선택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열한 살 시절의 약속대로 데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들의 어린 시절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또 이들의 앞날에는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원래 스티븐 킹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것은 공포 소설들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캐리>, <샤이닝>, <미저리>처럼 정말 오싹하고 무서운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스탠 바이 미>처럼 성장의 풍경을 담았거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본> 같이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룬 작품들도 많았지요.

<그것>은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준 스티븐 킹의 모든 역량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이 책에는 그의 작품 세계의 모든 모티브들이 다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왕따이거나 학대당한 아이들, 미치광이 살인마, 차별과 혐오에서 비롯된 끔찍한 폭력, 미국 특유의 도시 괴담(urban legend), 공포를 극복하고 얻은 성장의 열매라는 테마 등 이 소설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작가의 평생 자산이 된 것이죠.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작가 자신이 속한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트라우마와 광기를 속속들이 파헤치는 동시에,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으로 얼룩진 미국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점입니다. 막간극 형식으로 소개되는 데리의 과거 참사들은 모두 그런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흑인, 떠돌이 외지인, 노동 운동에 대한 불신은 끔찍한 살육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살인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티븐 킹의 관점으로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고, 거기서 자란 일반 시민들의 불안감을 활용해 체제를 유지해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80년대 중반 역시 에이즈 공포의 확산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성소수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했던 때입니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데리는 메인 주의 가상 공간이지만, 미국 전체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발매 당시 기록적인 판매 부수로 스티븐 킹을 최고의 작가의 자리에 올려 놓은 데에는,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테마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왕따클럽’의 7인은 미국에서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경험합니다. 비만이나 말더듬 혹은 ADHD 같은 개인적 결함부터,부모의 학대와 인종 차별 같은 것들을요.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될 스티븐 킹의 뛰어난 필력은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한없이 맘이 짠해지기도 하고, 그들이 이뤄낸 조그만 성공에 함께 기뻐하며 감동의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데리의 괴물 ‘그것’은 사람들 내면의 잠재된 공포가 만들어낸 틈을 이용해 자신의 먹이로 삼아 버립니다. 혼자 고립되어 외로운 영혼에게 다가가 환각을 보게 한다음 그대로 먹어치워 버리지요. ‘왕따클럽’ 친구들이 ‘그것’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대단한 기술이나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서로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 함께 힘을 모을 뿐이었죠. 오로지 그것만이 ‘그것’이 몰고 온 참혹한 살육을 막는 길이었습니다.

오늘의 세계인들은 신자유주의의 광풍 앞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고, 그런 삶이 지속되면 인간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여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분노는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향해 분출됩니다. 유럽의 이민자에 대한 혐오 정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바로 그 표현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 정서가 높아지는 것도 똑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것>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분노와 혐오를 멈추고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만이 앞으로 인류가 겪게 될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음습한 냄새를 풍기며 활동 중이니까요.

지난 주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그것>이 개봉했습니다. 영화판은 소설과 다르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만 따로 모아서 다루고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쪽에 신경을 더 쓴 편입니다.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교차시키면서 흥미를 유발했던 원작의 이야기 전략과도 다릅니다. 어른이 된 시점의 이야기는 따로 떼어 곧 제작에 들어갈 2부에서 다뤄질 예정입니다. 전체적으로 원작 소설의 주제 의식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온전히 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마침 영화 개봉에 맞춰 2004년에 나온 번역본을 약간 수정하고 멋진 표지를 붙인 판본이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정수를 맛보고 싶거나 영화를 보고 원작의 실체가 궁금해진 분들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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